"우리는 고다자였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너무 쉬워서다."
자신의 아파트 경비원 생활 등을 풀어낸 책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인 조정진(63)씨가 최근 입주민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59)씨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전직 경비원 "내가 당한 일과 똑같다"
지난 11일 조씨의 페이스북 계정엔 "책 '임계장 이야기'의 저자 조정진입니다"로 시작하는 글이 올라왔다.
조씨는 "밤늦게 퇴근한 뒤 뉴스를 보면서 경비원의 죽음을 접하고 엉엉 울었다"며 "내가 책에 쓴 내용과 전혀 다르지 않다. 오래된 아파트, 이중 삼중 주차, 폭언 폭행 모두 그대로"라고 말했다.
조씨는 "살아보겠다고 아파트 경비로 나선 것이지, 이렇게 죽으려고 노동을 했겠느냐"며 "노인들은 살아온 연륜이 있어 충동적으로 목숨을 내던지는 일은 거의 없다. 억울하고 분한데 말할 곳도 없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어 자신을 내던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릎꿇고 빌라고 할 때, 살고 싶지 않더라"
조씨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열악한 처지를 호소했다. 조씨는 "억울해도 말할 곳이 없다. 노조도 없고, 노동청이나 구청에 신고해도 아파트 주민들의 눈치를 먼저 살핀다"고 말했다.
자신이 당했던 '갑질' 사례도 언급했다. "수돗물을 낭비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빌라고 강요하던 입주민을 언급하며 "그때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조씨의 책 '임계장 이야기'에는 입주 차량을 향해 호루라기를 불었다거나 화단에 호스가 아닌 양동이로 물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고된 조씨의 실제 경험담이 등장한다.
경비원의 죽음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촉구했다. 조씨는 입장문에서 "내가 아파트에 근무할 때 만났던 대다수 주민은 선량하고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었다"며 "그분들이 실상을 몰라서 그렇지, 현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아파트 경비원들의 노동여건이 나아질 것으로 믿었다. 지금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조씨는 "억울한 죽음을 막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며 "이번 사건의 원인을 낱낱이 밝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초등학생처럼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겨진 피맺힌 유서, 서너 줄 밖에 안되는 마지막 외침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최희석씨는 "경비가 억울한 일 안 당하게 제발 도와달라. (폭언한 입주민을)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호소하는 유서를 남겼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