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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박격포 오발사고 5일간 은폐···軍 "흔치않은 실수 인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군 당국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사고를 닷새간 ‘조사 중’이라는 이유로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4일 경기 양주에서 발생한 박격포 오발사고 얘기다. 은폐 의혹뿐 아니라 기강해이, 작전 실패 등 현재 군이 처한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육군이 4.2인치 및 81mm 박격포 사격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뉴스1]

육군이 4.2인치 및 81mm 박격포 사격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다.[뉴스1]

19일 육군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8시 45분쯤 모 부대가 경기도 양주 훈련장에서 4.2인치(107㎜) 박격포 사격 훈련을 하던 중 고폭탄 1발이 2.2㎞ 떨어진 목표물에서 1㎞ 이상 더 날아가 떨어져 폭발했다. 군 당국이 무게를 두는 사고 이유는 단순하다. 장약이 과다 주입됐다는 것이다. 장약은 추진력을 얻게 하는 화약이다. 장약 양으로 사격 거리를 조정해야 하는데 담당 장교가 장약을 많이 넣어 사거리가 더 길어졌다는 의미다.

군 관계자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이어 “절차와 매뉴얼을 따르는 조치가 소홀했다”며 “흔치 않은 실수로 오발 사고가 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상 등 불가피한 사정을 감안해도 오발 범위는 100~200m에 그쳤어야 했다.

이번과 같은 어이없는 실수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군 기강해이 논란이다. 익명을 요구하는 육군 간부는 “수차례 안전점검을 거쳐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사고가 벌어진 건 결과적으로 ‘나사가 풀렸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에 대응하는 군의 자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육군은 이번 사고를 언론 보도 전까지 비공개에 부쳐 은폐 의혹을 자초했다. 공개 여부를 지역 기자들에게 공개하는 방안도 선택지에 올려놨지만 일단 조사 결과를 지켜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고 한다. 군 소식통은 “이런 결정엔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점도 고려됐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군 내부에서도 해당 방침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실수를 투명하게 알리고 쇄신 노력을 발표함으로써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게 순리라는 것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당장의 비판이 무서워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군의 고질적 무사안일주의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번 일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는 점은 육군의 은폐 의혹을 더욱 부채질한다. 오발 탄착지점은 산림청 소유 야산이었지만, 여기서 500m 내 민가가 있다. 민가와 방향이 달라 다행히 인명 사고를 피했지만, 자칫 아찔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군 안팎에선 ‘적을 잡기 위한 군사훈련이 국민 생명을 빼앗을 뻔했다’는 따가운 비판을 감수해야 해 비공개 방침을 고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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