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프트뱅크 일본 사상최대 적자, 손정의 T모바일 지분 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2면

일본 소프트뱅크가 지난 1~3월 1조4381억엔(약 16조5545억원)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이날 도쿄의 소프트뱅크 판매점 앞으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소프트뱅크가 지난 1~3월 1조4381억엔(약 16조5545억원)의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이날 도쿄의 소프트뱅크 판매점 앞으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생관을 되돌아보고 있다.”

지분 일부 도이치텔레콤에 넘길 듯 #손 회장, 위워크 등 잇단 투자 실패 #소프트뱅크 유동성 위기 몰려 결단 #투자 비판한 마윈 이사직서 내보내

일본 소프트뱅크그룹(SBG) 손정의(孫正義) 회장은 18일 창사 이래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관련한 발언이었으나 자신의 투자 실책으로 인한 실적 악화에 대한 반성을 담은 소회기도 하다. 소프트뱅크가 이날 밝힌 올해 1~3월의 적자는 1조4381억엔(약 16조5545억원)이다. 일본 기업의 분기 적자 액수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이전까지 일본 기업 최악의 분기 적자액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도쿄전력 홀딩스가 기록했던 1조3782억엔이었다. 그러나 도쿄전력 홀딩스의 적자액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인한 손실이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소프트뱅크의 적자는 손 회장이 주도하는 10조엔 규모의 ‘비전 펀드’를 통한 투자 사업이 실패한 결과다. 손 회장의 비전 펀드는 위워크(WeWork)·우버 등 스타트업 기업 투자 실패로 약 1조9000억엔의 손실을 냈다.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위축도 실적 악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손 회장은 결산 발표에서 직접 밝혔다.

일본 소프트뱅크, 최악의 실적 발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일본 소프트뱅크, 최악의 실적 발표.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19 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전체를 기준으로 산출한 소프트뱅크의 적자는 9615억엔이다. 소프트뱅크가 회계연도 기준 적자를 기록한 것은 15년만이다. 소프트뱅크는 매년 3월 결산을 한다. 다만 매출은 회계연도 기준으로 1.5% 늘어난 6조1850억엔으로 집계됐다.

궁지에 몰린 손 회장은 숙원이었던 미국 통신 사업 야망에 일단 브레이크를 걸었다. 현금 확보를 위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시간) 소프트뱅크가 보유하던 미국 주요 통신업체인 T모바일의 지분을 독일 통신업체인 도이치텔레콤에 매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손 회장의 결산 발표를 몇 시간 앞두고 나온 기사였다. WSJ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소프트뱅크가 합병을 위해 4880만주를 포기하고 거래가 성사된다면 도이치텔레콤의 T모바일 지분 소유 규모는 44%에서 50%로 오를 것”이라고 전했다. T모바일의 시장가치는 12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렇게 되면 T모바일의 모기업인 도이치텔레콤의 영향력이 더 확대된다. 손 회장은 2013년부터 미국 4위 통신업체였던 스프린트에 220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27조원)를 투자하면서 T모바일에 눈독을 들였다. 미국 1~2위 통신업체인 버라이즌과 AT&T에 대항하기 위해 스프린트와 T모바일을 동시에 인수하려 했으나,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이동통신사가 3개로 줄면 소비자 선택권이 위협받는다”며 합병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암초에 부딪쳤다.

손 회장은 특유의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그러다 친 기업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당선된 뒤 기회를 다시 노렸다.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트럼프를 찾아가 “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5만명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이듬해인 2017년 다시 T모바일의 모기업인 도이치텔레콤과 합병 논의에 착수했다. 수차례 결렬을 거쳐 겨우 합병에 합의한 게 지난달이었다. 그렇게 손에 넣었던 T모바일의 주식 25% 중 일부를 다시 도이치텔레콤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손 회장으로서는 눈물을 삼킬 대목이다.

손정의

손정의

손 회장에게 유동성, 즉 현금 확보는 그만큼 절체절명의 중요성을 가진다. 사상 최대 적자 폭도 해결해야 하지만 손 회장 본인이 현금을 주무기로 베팅을 해왔기 때문이다. 손 회장이 2016년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인 ARM을 320억 달러에 매입하면서 지불했던 수단도 전액 현금이었다. 한 주당 43%의 웃돈을 얹어준 거래였다. 당시 “미쳤다”는 말도 나왔지만 손 회장은 “ARM이 가진 사물인터넷(IoT)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50수 이상을 내다본 포석”이라고 자신만만해했다. 그러나 이후 세계적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 등에 대한 투자는 실패를 거듭했다. 위워크는 손 회장이 약속했던 투자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미국 법원에 지난달 고소까지 했다.

이제 관전 포인트는 손 회장의 향후 행보다. 손 회장은 이날 “우버는 물론 실패했지만 (역시 손 회장이 투자한 중국의 우버 격인) 디디는 실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며 “패러다임 시프트(전환)는 계속될 것이고, 무리한 범위가 아니라면 신규 투자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닛케이는 손 회장이 특유의 공격적 경영 스타일과 강력한 발언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때 그의 사업 파트너였던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이날 사내이사직을 6월 25일 자로 퇴임한다고 소프트뱅크가 밝혔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마윈은 지난해 12월 손 회장에게 “비전 펀드가 너무 많은 돈을 들여 너무 많은 실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손 회장이 이에 반발해 마윈을 이사진에서 물러나게 했다는 관측이다.

소프트뱅크는 이날 대신 와세다대 경영대학원의 가와모토 유코 교수와 미국 투자회사 월든 인터내셔널의 창업자 립부탄을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둘 다 손 회장에게 견제구를 던질 수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손 회장에 대한 견제는 소프트뱅크의 주주이자 공격적 행동주의로 유명한 미국 펀드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요구 사항이기도 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