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이러려고 의약분업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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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대체 뭘로 보나. 우리가 봉인가. "

의약분업 시행을 둘러싸고 지난 6월말 병.의원 폐업으로 시작된 의료계의 파행이 전공의.전임의 파업과 병.의원 전면 재폐업 결의, 그리고 10일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진료 거부로 이어지면서 극에 달하고 있다.

병원 진료의 주축을 이루는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철수하면서 진료 차질.수술 연기 등 ´진료 공백´ 으로 환자만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목숨을 잃는 환자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또 의사들의 비협조로 처방전 리스트가 약국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처방전을 받고도 약을 구하지 못한 환자들이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가운데 입장이 어려워진 정부가 10일 오전 처방전료 63%.재진료 23.3% 인상 등을 포함, 의료보험 수가(酬價) 6.5% 인상이라는 ´파격적´ 카드를 제시하자 시민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병원 폐업과 파행적 의약분업으로 국민들의 고통이 극심한 형편인데 국민적 합의 없이 수가 인상까지 한다는 건 결국 부담은 국민이 다 지라는 무책임한 얘기" 라며 정부를 비난했다.

이들은 또 의료계에 대해 "끝간 데를 모르는 폐업과 파업으로 이제 국민의 인내심은 한계에 이르렀다" 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망각하고 국민 생명을 볼모로 삼는 저질 싸움을 중단하라" 고 촉구했다.

´의약분업 정착을 위한 시민운동본부´ 소속 21개 시민단체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폐업의 목적과 방향이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의료계 폐업은 시민사회 내에서 의료계를 스스로 고립시키는 일" 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정부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10일의 정부대책은 실현 불가능한 ´달래기용 전략´ 에 불과하다" 며 "국민에게만 부담을 전가하는 식이라면 시민사회단체가 이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 이라고 경고했다.

참여연대 김기식(金起式) 정책실장은 정부 발표에 대해 "새 장관이 임명되자 난국을 어떻게든 빨리 해결해보겠다는 욕심에 보건의료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이익집단의 이기주의에 끌려다닌 꼴"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수가 인상은 곧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데 일은 정부가 저지르고 뒤처리는 국민이 하라는 식밖에 더 되느냐" 고 비판했다.

건강연대 강창구(姜昌求) 정책실장은 "추가 소요 재정 2조2천억원은 결국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 돈" 이라며 "의료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의료 접근도를 높이는 개혁은 분명 필요하지만 대책 없이 수가만 올려주겠다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병옥(朴炳玉) 경실련 정책실장은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요구만 줄기차게 주장하는 의사들은 대화 기능이 마비된 집단 같다.

아무리 목청을 높여 얘기해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이제는 무력감마저 느낄 지경" 이라며 신속한 의료기능 정상화를 요구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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