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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더 풀라, 파월의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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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 추가 경기부양 안 하면 수년간 고통스런 침체” 

제롬 파월 미 Fed 의장

제롬 파월 미 Fed 의장

‘세계 경제 대통령’이 내놓은 경고 메시지가 전 세계 금융시장을 출렁이게 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제롬 파월 의장이다. 파월은 미국 경제 앞날에 대해 “매우 불확실하고 심각한 하강 위험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13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주최한 화상 대담에서다.

Fed 의장, 금기 깨고 의회까지 겨냥 #4월 실업률 대공황 이후 최악에도 #트럼프 “안 서둘러” 재정지출 냉담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 가자” 압박 #파월 “다른 좋은 도구 있다” 선그어

파월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충격에 대해 “경기 침체의 범위와 속도는 현대에 선례가 없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떤 경기 침체보다 훨씬 나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추가적인 경기 부양책을 승인해야 한다고 백악관과 의회에 촉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경기 침체가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Fed 의장이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 지출 확대를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워싱턴포스트는 Fed 의장이 의회에 정책 결정을 주문하지 않는 금기를 깬 것이라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정부와 의회가 충분한 정책 지원으로 기업 파산과 실직 사태를 막지 않으면 코로나19가 미국 경제를 영구적으로 훼손할 수 있다는 경고라고 풀이했다.

미국 실업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미국 실업률. 그래픽=신재민 기자

13일 뉴욕 증시는 파월의 경고 발언 이후 급락세로 돌아섰다. 이날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2.17% 내렸고 나스닥 지수도 1.55% 하락했다. 14일 국내 증시의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5.46포인트(0.8%) 내린 1924.96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도쿄 증시의 닛케이지수(-1.74%)와 홍콩 증시의 항셍지수(-1.45%)는 코스피보다 하락 폭이 컸다.

성장률은 곤두박질

성장률은 곤두박질

파월은 금융시장에 돈을 푸는 유동성 공급은 Fed의 역할이지만 가계와 기업에 실제로 돈을 쥐여줘 지급 능력을 높이는 것은 정부의 몫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는 “경제 회복의 모멘텀을 얻기 위해선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유동성 문제가 지급 능력 문제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가 재정 지출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장기적인 경제 손실을 막고 더 강력한 회복을 가져올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사진) 행정부와 공화당은 추가 재정 지출에 미온적이다. 지난 8일 미국 노동부는 지난달 실업률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인 14.7%로 치솟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경기 부양을) 서두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추가 현금 지급과 주 정부 재정 지원을 골자로 하는 3조 달러(약 3600조 원) 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을 발의했다. 공화당은 앞서 집행한 예산의 효과를 따져본 뒤 추가 예산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1분기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4.8%(전분기 대비 연율 환산)였다.

금융시장의 관심이 집중됐던 마이너스 금리 가능성에 대해 파월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파월과 대담에 나선 애덤 포젠 PIIE 소장은 “기자들이 좀이 쑤실 것 같은 질문은 마이너스 금리에 관한 것일 것”이라며 “사실 나는 당신의 대답을 알고 있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파월은 이 말을 듣고 ‘하하’ 소리 내 웃었다. 그러면서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팬이 있는 것은 잘 안다. 현재로선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는 지난 12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마이너스 금리의 혜택을 다른 나라들이 누리고 있는데 미국도 그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파월을 압박하기도 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4년 6월부터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유지하고 있다. 현재 ECB 기준금리는 연 -0.5%다. 시중은행이 ECB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이자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리면 저축 의욕을 꺾고 소비 심리를 자극하게 된다. 그러면 내수 경기를 떠받치고 물가 하락을 방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특히 금융시장의 왜곡을 초래하고 부동산·주식 등 자산가격의 거품을 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Fed는 지난 3월 기준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연 0~0.25%)으로 낮췄다. Fed는 107년 역사상 한 번도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린 적이 없다. 그렇다고 파월이 마이너스 금리를 영원히 불가능한 것으로 못을 박았다고 보기엔 조심스럽다. 파월은 “우리는 (마이너스 금리 외에) 좋은 도구들을 갖고 있으며 그 도구들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채권 시장에선 이르면 올해 말 Fed가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릴 수 있다고 보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

파월에게도 고민은 많다. 금리인하에 이어 양적완화까지 동원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지만 코로나19에 막힌 경제의 ‘숨통’은 쉽사리 살아날 것 같지 않아서다. 파월은 “경기 회복이 우리의 바람보다 늦어질 수 있다”며 “느린 회복은 기업과 가계의 파산으로 이어지며 오랜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방법으로 통화정책을 펴는 Fed의 역할이 시험대에 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서울=전수진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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