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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짜증쟁이 딸과 갱년기 엄마,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38)

’그렇게 착하고 엄마 말도 잘 듣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중고등학교 아이를 둔 지인들이 늘 하던 말을 나도 이제 체감하고는 한다. [사진 Unsplash]

’그렇게 착하고 엄마 말도 잘 듣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중고등학교 아이를 둔 지인들이 늘 하던 말을 나도 이제 체감하고는 한다. [사진 Unsplash]

5월 연휴, 집 안에서 종일 머물던 중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이 눈에 들었다. 그래픽 노블 〈가족의 초상〉. 잔뜩 성이 나 있는 10대 후반의 딸과 서로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엄마, 아빠, 여동생의 모습이 커버로 그려져 있었다. 표지만으로도 내용이 짐작됐다. 그래픽 노블 컬렉터인 남편이 구입한 책일게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었는데 1시간 넘게 꼼짝하지 않고 앉아 끝까지 다 읽어 버렸다.

이야기는 반항심 가득한 18세 소녀 마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마리의 부모인 라이프와 건, 그녀의 동생인 스티나, 그리고 부모의 친구로 등장해 이들 가족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라그나르라는 남자, 이 5명의 인물이 마치 연극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처럼 쏟아내는 모놀로그 형식의 만화다. 예민한 십대 소녀 마리는 주변의 모든 일이 마뜩잖다. 특히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부모는 그녀에겐 아쉬움과 원망의 대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의 오랜 친구를 자처하며 집 안을 들락거리던 라그나르가 마리의 몸에 손을 대려고 하고, 이때부터 이 다섯 명의 관계는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마리에게 매혹당했다고 생각하는 라그나르는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대신 그녀의 엄마를 유혹한다. 엄마는 마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가족이 아닌 그와의 행복한 삶을 꿈꾸며 남편과 아이들을 떠난다. 아빠 역시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재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여동생 스티나는 그나마 마리의 대화상대가 되어 주지만 늘 비관적인 언니를 진심으로 이해하지는 못한다. 단절된 가족 관계 속에서 지내온 마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를 고립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단촐한 4인 가족이지만 그들은 가족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의무감으로만 느낀 채 괴로워하고, 회피하려 한다. 진심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가족의 초상〉은 스웨덴의 대표적 여성 만화가인 오사 게렌발이 서른 살에 출간했던 작품이다. [사진 우리나비]

〈가족의 초상〉은 스웨덴의 대표적 여성 만화가인 오사 게렌발이 서른 살에 출간했던 작품이다. [사진 우리나비]

엄마에게 마리는 늘 화가 나 있고, 공격적이며 예민한 딸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힘들어졌다고 생각했다. ‘마리는 거의 매일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 애가 이유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애를 질투했던 것도 같다. 십대의 특권인양 마리는 기분 내키는 대로 툭하면 소리를 질러대곤 했다. 나는 어른이었다. 그러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나의 기분은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나란 사람은 고함을 지를 권리조차 없지 않은가!’ 순간 ‘나는 어떻지?’란 생각을 하게 됐다. 나 역시 가끔은 변덕을 부리거나 짜증을 피우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숨을 쉰 채 돌아 나오고는 하지 않았나? 또 가끔은 “엄마 힘들어. 갱년기라니까. 좀 친절하게 이야기해 주지 않을래?”라는 말도 했던 것 같다. 책 속 마리처럼 우리 아이도 엄마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바라봐주기를 원해서 그랬을지 모르는 데 말이다. 물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엄마는 ‘이 정도로 관심을 갖고 돌봐 주는 데, 더는 어떻게 해?’라며 반문할 수도 있다. 아이가 원하는 관심과 엄마가 생각하는 관심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기 전까지 말이다.

〈아이의 방문을 열기 전에〉는 ‘10대의 마음을 여는 부모의 대화법’이란 부제가 끌려 챙겨 놓았던 책이다. [사진 창비]

〈아이의 방문을 열기 전에〉는 ‘10대의 마음을 여는 부모의 대화법’이란 부제가 끌려 챙겨 놓았던 책이다. [사진 창비]

아차, 싶은 마음에 집 안에 있는 다른 책들을 펼쳐 보기 시작했고,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의 말공부〉의 저자 이임순 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이 쓴 〈아이의 방문을 열기 전에〉란 책이다. 저자는 사춘기 청소년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이전 시기의 아이를 돌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접근과 방법,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소년은 아이이면서 어른이고, 철부지이면서 성숙한 존재이다. 아직 덜 컸지만 다 컸다고 생각하고, 미숙하면서 완벽하다고 자만하기도 한다. 지금 자신이 겪는 작은 세상이 세상의 전부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10대도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때로는 부모님의 어떤 모습이 때로는 나를 둘러싼 학교와 친구들의 상황이 마뜩잖았고, 그걸 짜증으로 표현하거나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울해 하기도 했었다.

사춘기는 성장과 변화를 겪게 되는 때이다. 앞으로의 시간을 위해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부모는 일상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게 그리고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사진 Pixabay]

사춘기는 성장과 변화를 겪게 되는 때이다. 앞으로의 시간을 위해 배워 나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부모는 일상의 즐거움을 놓치지 않게 그리고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사진 Pixabay]

저자 역시 청소년들이 자신의 불안하고 여린 속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거친 말과 행동으로 왜곡해서 표현한다고 말한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부모는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점만 보고 지적하게 되는 데 중요한 것은 그 이면의 진심을 보고 대화를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말하지 않아도 헤아려주기를 바라는 아이의 마음을 매번 따라잡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와 의지할 수 있는 어깨를 전하는 건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소년기 10년은 그 이전의 10년보다 더욱 섬세하고 전문적인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부모인 내가 심리적으로 지치고, 화가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면 아이를 원망하고 싶어진다. 그래서야 아이를 제대로 도와줄 수가 없다. 마음이 진정되고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여야 지혜롭고 현명하게 아이를 도와줄 수 있다. 부모인 나의 마음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라는 저자의 조언을 새겨두기로 했다. 키는 엄마보다 크지만 이제 14살, 이제 막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법을 익히는 시기, 그것도 쉽지 않은데 해야 할 공부는 계속 늘어가고, 시간은 없는데 재미있는 일은 찾고 싶고, 그런 즐거움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시기, 그래서 좌충우돌 마음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시기 아닌가. 그런 아이에게 ‘너는 사춘기지만, 엄마는 갱년기야’식의 말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

한 곳을 바라보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 시간을 아이와 나누고 싶다. [사진 Unsplash]

한 곳을 바라보다, 서로를 바라보는 그 시간을 아이와 나누고 싶다. [사진 Unsplash]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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