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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민정수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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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고(故) 권재진 전 법무부 장관은 친화력과 유머 감각으로 무장한 인자무적(仁者無敵)의 표본이었다. 업무 능력도 겸비해 서울고검장까지 승승장구했다. 운과 연이 닿지 않아 검찰총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때까지의 업적만으로도 충분히 장관 후보군에 들어갈 만했다.

경로가 뒤틀린 건 퇴임 이후인 2009년 이명박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되면서다. 그가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 이른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검찰의 1차 수사가 시작됐다. 그 직후 사찰 관련 내용이 담긴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등 증거 폐기 작업이 진행됐다. 지시에 따라 그 일을 떠안은 장진수 총리실 주무관에게 5000만원을 동반한 입막음 행위가 뒤따르기도 했다. 결국 증거 인멸 사실이 폭로돼 2차 수사가 개시됐을 때 권 전 장관은 검찰을 수하에 거느린 법무부 장관이 돼 있었다.

증거 인멸과 입막음 과정 관여 의혹이 제기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현직 장관이었던 그를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던 젊은 검사들은 수사팀에서 쫓겨났고, 그에게는 수사 무마 의혹이 더해졌다. 하지만 이 사안은 이후에도 여러 번 이슈화했고, 그때마다 그의 이름은 언론지상을 장식했다.

민정수석이 ‘극한 직업’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권력층 비리 감시’인 업의 본질이 ‘비리 뒤처리’로 변질되기 십상이라서다. 그 직위가 ‘독이 든 성배’로 비유되는 이유다. ‘뒤처리’와 수사 과정에서 겪게 될 마음고생과 공포의 수위는 능히 짐작 가능하다. 권 전 장관이 9일 67세라는 아쉬운 나이에 별세한 것도 이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아수라장 속에서 비망록을 쓰면서 버텼던 김영한 전 민정수석도 직위가 독이 된 케이스다. 꼬장꼬장했던 그는 사퇴한 지 1년여 만인 2016년 불과 59세로 생을 마감했다. 공동 정범이었는지 단순 종범이었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우병우 전 민정수석 역시 정권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좋지 못한 말로를 걸었다.

거명된 사건들만 훑어봐도 ‘극한 직업’으로서의 민정수석직을 수행한 것으로 넉넉히 인정할 만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8일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치지 않고 싸우겠다”는 게 일성이었다. 그는 어떤 민정수석으로 역사에 기록될지 재판 결과와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