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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 클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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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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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중국 외교부 기자회견장. 외신기자와 대변인 사이에 보기 드문 설전이 벌어졌다. 기자는 호주 매체 ‘오스트렐리안’(The Austrailian)의 베이징 특파원 윌 글래스고, 대변인은 겅솽이다.

▶글래스고 기자=“어제 기자회견에서 두 명의 캐나다인이 왜 500여 일 동안 구금됐는지 물었다. 그런데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기자회견 기록에는 이 대목이 빠졌다. 베이징에 새로 온 특파원으로서 외교부가 어떤 기준으로 질의응답을 넣고 빼는 것인지 알고 싶다”

▶겅솽=“어제 우리 두 사람은 비교적 긴 시간 대화를 나눴다. 한 마디 물어도 될까? (기자 침묵) 당신은 이 것에 대해 얼마나 썼나? 내가 한 말을 보도에 다 썼나? (기자 여전히 침묵) 물론 당신은 자신의 기사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같은 이치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기자회견 상황을 어떻게 반영할지는 우리가 결정한다. 하나 더. 외교부 홈페이지를 자세히 보시라. 우리는 기자회견문을 구술록(transcript)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기자 무반응)”

글로벌아이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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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정부 당국의 역할과 의무가 같을까. 다양한 매체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건 언론의 존재 이유다. 왜곡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사실을 취사 선택하는 건 숙명과도 같다. 판단은 국민 몫이다. 반대로 정부는 유일하다. 내부적으로 정보 전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언론처럼 정부도 사실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여론 통제는 시작된다.

또 하나. 당시 기자는 영어로 질문했고 대변인은 중국어로 답했다. 아직 중국어가 익숙치 않은 호주 기자는 대변인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반응하지 못한 걸 침묵으로 표기했다. 현장 상황을 모르고 텍스트만 본다면 대변인의 판정승처럼 읽힐 수 있다.

기자는 계속 질문을 던졌다.

▶글래스고=“내가 지난 주말 중산공원에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이 외국 기자의 출입은 허가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도 법인가?”

▶겅솽=“이 질문의 목적은 뭔가? 중산공원에 가고 싶다면 내 동료들이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 외국 기자들에 편견을 갖고 있는지, 통제하는지 묻는 거라면 당신의 관점은 편향된 것 같다. 그리고 기자회견은 당신의 개인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가 아니다.”

기자는 다음날 자신의 기사로 답했다. “중국이 말하는 ‘개혁 개방의 시대’는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인 것 같다. 전 세계 인구의 5분의1을 차지하고 호주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인 이 나라는 더욱 억압적인 곳으로 변하고 있다.”

박성훈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