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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값 해""니가 뭔데 난리"…고성·욕설 오간 통합당 전국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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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당을 너무 높게 평가한 것 같다.”

4·15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미래통합당 소속 A씨는 2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당이 이 정도 추락하면 위기의식이 조금은 생길 줄 알았다”며 한숨 쉬듯 말했다. 전날 통합당 전국위원회 상황에 관해 얘기하던 대목이었다. A씨 뿐 아니라 전국위에 참석했던 많은 이들이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비공개로 진행된 전날 전국위 회의장에선 어떤 광경이 펼쳐졌던 걸까.

[현장에서]

28일 오후 상임 전국위원회에 참석한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권한대행(오른쪽)과 정우택 전국위원회 의장. 이날 상임 전국위는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뉴스1]

28일 오후 상임 전국위원회에 참석한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권한대행(오른쪽)과 정우택 전국위원회 의장. 이날 상임 전국위는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해 보면, 전국위원회 회의 시작은 무난했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을 두고 열띤 찬반 토론이 오고 갔다고 한다. 비대위 찬성파는 “최선은 아니지만, 대안도 없다. 이미 당선인과 의원들 의견을 물어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파는 “당을 습관처럼 외부인에게 맡긴다”거나,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고 절차적인 문제도 많아 당장 결정해선 안 된다” 등을 이유로 댔다.

그러나 표결이 가까워질수록 분위기는 삭막해졌다. 일부 참석자들이 웅성거리는가 싶더니 여기저기서 고성·욕설이 터져나왔다. 여기에 현직 국회의원들도 가세했다.

“뭔데 나서서 난리야. 당 대표라도 되냐.”
“어이 그만 안 해? 그따위로 할 거야 진짜.”
“나이를 먹었으면 나잇값을 해야지.”

이 와중에 ‘김종인 비대위’ 출범에 반대해 온 조경태 최고위원은 의사 진행 과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단상에 올라 소리를 치며 항의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한 참가자는 “(조 최고위원이) 발언 순서가 아닐 때 수차례 단상에 올라 큰 소리로 반발하고, 단상을 휘젓고 다니는데 무슨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더라”고 주장했다. 다른 참가자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민주적 토론과 설득의 범위를 한참 넘어선, 그야말로 난장판 콩가루 그 자체였다”고 했다.

자유청년연맹 회원들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김종인 비대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자유청년연맹 회원들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김종인 비대위'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실제 표결을 진행할 때는 더 심했다고 한다. 정우택 전국위 의장이 “반대하는 사람만 기립하라”고 하니 비대위 전환에 반대하는 일부 참가자들 사이에서 “그런 표결이 어딨느냐”며 욕설 섞인 항의가 쏟아졌다. 이어 “반대가 적으니 찬성 숫자는 확인하지 않고 그냥 의결된 것으로 하겠다”는 정 의장의 말에도 조 최고위원이 회의장 단상에 올라 의장석 책상을 흔들며 거세게 항의했다.

이에 대해 조 최고위원은 "반대의견부터 물어서 기립하게 하고, 찬성 표결은 아예 진행도 하지 않는 등 편파적이고 불합리한 의사진행이 이뤄져 그에 대해 항의한 건 맞지만 발언 순서가 아닐 때 단상에 올라가 소리치거나 한적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이런 소동 끝에 전국위원회는 김 전 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가결했다(찬성 177명, 반대 80명). 하지만 비대위 활동 기한을 8월말로 정한 당헌은 상임전국위를 열지 못한 탓에 고치지 못했고, 결국 김 전 위원장은 전국위 결정을 거부했다.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미래통합당 제1차 상임전국위원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뉴스1]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미래통합당 제1차 상임전국위원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뉴스1]

당내 파열음은 29일에도 이어졌다. 통합당 최고위는 '김종인 비대위' 출범 여부 등을 안건으로 놓고 이날 장시간 회의를 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최고위 회의 후 "왜 결론을 못 냈나", "당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곧 말씀드리겠다"는 말만 남기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통합당 ‘청년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제1야당이 한 개인에게 무력하게 읍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당 지도부는 전원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하는 등 당 주변은 하루종일 어수선했다.

총선 참패를 당한 제1야당의 난장스러움은 언제쯤 가닥이 잡힐까. "쫄딱 망한 집구석의 알량한 세간에 눈들이 멀어 서로 쌈질이나 하고 있다”(28일 페이스북)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쓴소리에 많은 이가 고개를 끄덕일 듯싶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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