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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가 '하양,갈색,초록'으로 들리는 이 남자의 음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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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방식으로 음악을 배치하는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 [사진 유니버설뮤직]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을 배치하는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 [사진 유니버설뮤직]

 이 앨범의 수록곡은 28곡. 클래식 음반 치고는 많다. 수록된 음악의 배열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 또다른 특징이다. 시작은 20세기 초반 드뷔시의 작품. 이어서 18세기 작곡가인 장 필립 라모, 다시 드뷔시, 라모를 세 번 반복한 후 드뷔시의 ‘라모에 대한 찬사’로 끝난다.

현재 세계 무대가 주목하는 독특한 신인 비킹구르 올라프손(36·아이슬란드)의 최신 음반 ‘드뷔시ㆍ라모’다. 그는 두 작곡가의 작품을 하나하나 골라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배치했다. 첫 곡인 드뷔시 ‘축복받은 여인’의 정적으로 시작해 라모의 ‘새들의 지저귐’ ‘마을 사람들’을 배치했다. 그는 앨범의 해설지에 “꿈결 같은 전주곡이 끝나고 새들이 사는 어스름한 숲, 자연과 마을의 생생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이라 썼다.

올라프손은 작곡가가 작곡한 묶음대로 모아서 연주하거나 그 순서대로 녹음하지 않는다. 2017년 데뷔 앨범에서는 필립 글래스의 연습곡을 9ㆍ2ㆍ6ㆍ5번 식으로 연주했다. 자신만의 스토리를 따라 재배열하는 음반에서 독특한 해석과 정확한 메시지를 전하는 그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아이슬란드의 글렌 굴드”라고 했다.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음반 녹음으로 스타가 됐으며 말년에는 무대를 피하고 완벽한 녹음에 집착했던 것을 빗댄 것이다.

 e메일 인터뷰에서 올라프손은 “다른 시대의 두 작곡가를 골라 불가능한 대화를 실현해보고 싶었다. 200년 시차를 둔 두 거장이 동시대의 작곡가들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가깝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배열, 큐레이션에 대해서도 소신을 가지고 있다. “기존에 연주했던 곡들로 당장 내일 앨범 5장을 녹음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런 작업에는 관심이 없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갤러리에서 미술 작품을 큐레이션하는 것처럼 내가 구상한 맥락에 맞춰 넣었다.” 이 조합을 만드는 데에만 6개월이 걸렸고, 쓰이지 않은 수많은 조합이 있다고도 했다.

결과물은 신선하고 낯설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연극 공연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시각화됐다. 이 독특한 인상은 올라프손이 가진 음악 공감각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는 음을 들으면 색채가 보이는 감각을 가진 사람 중 하나다. “나에게 ‘도ㆍ레ㆍ미ㆍ파’는 ‘흰색, 갈색, 녹색, 파랑’”이라고 했다. “음과 연결된 색은 음마다 늘 동일하게 떠오르는데 그 색이 매우 강렬하다. 공감각에 대해 얘기하면 조금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지만, 어쩌면 피아노를 가르쳤던 어머니 덕에 한두살부터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닐까 싶다.”

2017년 첫 음반을 낸 후 올라프손의 앨범 트랙은 늘 화제가 된다. 바흐를 주제로 한 음반에서도 순서를 섞고, 직접 편곡해 연주하고, 다른 종류의 작품집에서 음악을 가져와 붙여 연주했다. 그는 “음반 녹음을 정말 좋아한다. 마이크와 절친한 친구가 된 기분”이라며 “머리 속에 늘 4~5개의 녹음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약 일 년 반마다 음반을 발매해온 올라프손은 “다음 앨범의 주제도 결정했다”며 “아직 공개할 수는 없지만 두 명 이상의 작곡가가 들어간다”고 했다. 이어 “바로크, 인상주의, 현대 작곡가가 아닌 다른 시대라는 건 알려줄 수 있다. 위대한 천재인 한 명을 중심으로 다른 곡들을 큐레이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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