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뉴욕 메트의 위기 대처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코로나19로 시작된 수많은 랜선 음악회 중 최근의 승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메트)였다고 생각한다. 26일(현지시간) 메트 오페라 무대에 서왔던 유명 성악가들이 세계 각지 자신의 집에서 노래한 영상이었다. 르네 플레밍, 요나스 카우프만, 브린 터펠 같은 쟁쟁한 성악가들이 미국·프랑스·독일 등 13개국에서 4시간 동안 릴레이로 참여했다. 메트에 따르면 30시간 동안 공개된 이 영상의 시청자는 162개국 100만명이다.

메트는 코로나 팬데믹 시국의 돋보이는 선두주자로 꼽힌다. 지난달 극장 문을 닫은 후 매일 저녁 오페라 한 편을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공개하는 ‘콘텐트 방출’을 앞장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영상의 완성도였다. 메트가 이번에 공개한 오페라 영상들은 2006년부터 전 세계 ‘판매’를 목표로 만들어온 것들이다. 갑자기 닥친 집콕 시대에 급조한 영상과는 만듦새가 달랐다.

오페라 영상화를 추진하는 피터 겔브 메트 총감독. [중앙포토]

오페라 영상화를 추진하는 피터 겔브 메트 총감독. [중앙포토]

변화는 피터 겔브 총감독이 2006년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이전 직장인 음반사에서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다양한 시도를 제의했던 그는 메트에서 티켓 판매 저조라는 난제를 영상 제작으로 뚫고 나갔다. 당시엔 비난이 만만치 않았다. 단돈 20달러에 볼 수 있는 영화관 오페라는 무대 오페라의 입지를 위축시킬 수도 있었다. 실제로 메트 오페라의 좌석 점유율은 겔브 취임 이후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해 최근까지도 70% 후반대에 그치고 있다.

영상 제작은 비용도 많이 들었고 2011년에야 영상화 사업의 첫 흑자가 났다. 100년 넘게 같은 방식으로 일해왔던 노조도 설득해야 했다. 평론가들도 비판했다. 카메라 앵글이 정해준 대로 봐야 하는 오페라 무대는 진짜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겔브 감독이 오페라 연출자, 무대 제작자, 출연 성악가에게까지 무대가 아닌 영상을 최우선으로 여기도록 주문한다는 논란도 이어졌다. 취임 초기 겔브는 오래된 오페라 애호가에게 이런 쪽지까지 받았다. “무식한 당신은 메트의 수치입니다. 당장 사직하세요!”

겔브는 그래도 영상 사업을 밀고 나갔다. 2017년엔 70여개 국에서 1억1100만 달러(약 1365억원)를 벌어들였다. 전 세계 예술단체들의 영상화 성적표가 코로나19로 강제 공개되면서 메트의 위상은 올라갔다. 무대 예술의 영상화라는 새로운 과제에서 메트의 사례는 원형이 될 듯하다.

메트 오페라는 현 상황을 큰 위기로 진단해 긴급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손실을 6000만 달러(약 732억원)로 본다.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임금을 반납한 겔브 감독의 임기는 2027년까지로 지난해 연장된 상태다. 오페라 청중 급감이라는 위기에서 무기를 벼려온 곳의 또 다른 위기 대처법에 세계 음악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