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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그 어느 때보다 음악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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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코로나19는 비극적이지만, 음악 듣기의 새로운 방법을 남기고 있다. 공연 단체, 공연장이 온라인으로 음악을 들려주게 됐기 때문이다.

수많은 들을 거리, 볼거리가 나왔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연주를 추천한다.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마치 이런 시대를 예견한 듯 베를린필의 상임 지휘자이던 2008년 디지털 콘서트홀을 시작했다. 베를린필은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퍼지자마자 이 온라인 DB를 한 달 무료로 풀었다.

2018년 베를린필을 떠났지만 객원 지휘로 돌아온 래틀의 지휘는 관객 없이 열려 무료 스트리밍됐다. 래틀은 또다시 예상이라도 한 듯 딱 맞는 연주 곡목을 차려냈다. 공연은 루치아노 베리오의 1968년 작품으로 시작해 벨라 바르토크의 1943년 곡으로 끝난다. 각각 ‘8명의 목소리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아’ ‘관현악 협주곡’이다.

베를린필 무료 스트리밍 공연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 [홈페이지 캡처]

베를린필 무료 스트리밍 공연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 [홈페이지 캡처]

무엇보다 빛난 것은 래틀의 말이었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그는 예술, 인간, 인간의 감정을 아우르는 통찰을 내놨다. “오늘 멋지면서도 이상한 콘서트를 하게 되는데, 우연히도 적당한 곡들을 연주한다. 음악을 들으면 우리가 어디로 여행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는 첫 곡에 “인간의 모든 감정이 겹겹이 쌓여있다”고 했다. “한숨, 웃음, 혼란스러운 슬픔, 외로움, 유머, 에너지로 이뤄진 이야기다. 음악이 끝나면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다.” 마지막 곡에서는 코로나 시대 이후를 봤다. “모든 감정을 경험하고 난 우리에게 바르토크의 작품은 낙관을 이야기한다.”

무대에 선 래틀은 관객이 아무도 없는 음악회를 여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신호를 보내야 했다. 전 인류가 위기에 있기 때문에 예술과 음악이 필사적으로 중요하다는 신호다. 우리가 당분간은 서로 떨어져 있으니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물론 영국인 특유의 유머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운 20세기의 음악을 연주해도 객석에 몇 명은 있었는데 오늘처럼 아무도 없기는 처음이다.”

코로나 시대가 길어지면서 모두가 지쳐간다. 역설적으로 배려 깊은 말, 따뜻한 예술이 가진 위로의 힘은 점점 강해진다. 사람들의 마음이 날카로워질수록 품위 있는 예술가들의 접근은 섬세해진다. 2017년 은퇴를 선언했던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는 지난달 28일 유튜브에서 연주하며 또 하나의 조용한 위로를 건넸다.

“비극적 상황이지만, 우리는 이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알게 됐다. 나 자신을 돌보는 것, 지구를 아끼는 것, 그리고 서로를 돌봐주는 것이다.” 어쩌면 각자 자리에서 온화한 말과 음악을 나누며 이 시기를 넘겨볼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