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잠적 오거돈, 나흘전 남긴 말

중앙일보

입력

지난 23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는 오거돈 전 시장. 연합뉴스

지난 23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는 오거돈 전 시장. 연합뉴스

오거돈 전 시장은 지난 23일 성추행 사건으로 사퇴한 이후 곧바로 잠적해 27일 현재까지 연락 두절 상태다. 평소 가깝게 지낸 지인들과도 연락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 전 시장 옆에서 보좌했던 부산시 정무라인 공무원들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드릴 말씀이 없다”거나 전화를 받지 않는 등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다. 오 전 시장과 가깝게 지낸 지인들을 취재해 사퇴 전후 상황을 알아봤다.

오 전 시장, 23일 사퇴이후 종적 감춰 #친하게 지낸 지인들도 아직 소식 몰라 #오 시장 정무라인은 “드릴 말씀 없다”

 20여년간 오 전 시장을 알고 지낸 한 기업체 회장은 27일 “사퇴한 23일 오후 10시쯤 잠시 통화를 했다”면서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성추행과 관련)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전화상의 목소리로 미뤄 오 시장이) 약주를 드신 목소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까운 분과 이번 일 의논 안 했느냐고 물으니 ‘글쎄 말이다’며 확답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후 두 사람은 사업을 잘하라 등 덕담을 나눈 뒤 “언제 함 봐야죠”“한번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후 통화를 하지 못했다는 게 이 기업체 회장의 얘기다.

지난 23일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허리 숙여 인사하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송봉근 기자

지난 23일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허리 숙여 인사하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송봉근 기자

 오 전 시장 성추행 사건과 관련, 지인들은 사전에 사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에 사무소를 둔 한 공적 단체의 간부는 “사퇴 낌새가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기자회견보고 사퇴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텔레그램으로 연락해 통화하고 했는데, 사퇴 회견 직후 텔레그램으로 연락하니 본인이 탈퇴해버려 연락이 안 되더라”고 전했다. 그는 “최근에 다시 텔레그램으로 연락을 시도해도 탈퇴로 나오더라”며 “주위에 물어봐도 전화를 안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캠프 등에서 일하다 경제단체로 자리를 옮긴 한 측근은 “사퇴 당일 오전 8시 조금 지나 무슨 무슨 일 있어 오 시장이 오전 11시 사퇴 기자회견 한다는 간단한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이 지인이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전에 사퇴 사실 등을 전혀 몰랐고, 사퇴과정에서 작성한 공증서를 누가 주도적으로 작성했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사퇴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시 간부들은 전혀 몰랐다. 나도 사퇴 당일 사퇴 사실을 알았다”고 말한 바 있다.

 오 전 시장은 성추행 사건이 있기 전만 해도 재선 의지를 피력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수십 년 오 시장을 만났다는 한 지인은 “한 달 전쯤 지인 몇 명과의 모임에서 48년생인 오 시장이 46년생인 미국 대통령 트럼프, 42년생인 부통령 조 바이든의 예를 들며 재선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당시 지인들 간에 설왕설래했다는 게 이 지인의 전언이다.

지난 23일 오후 부산성폭력상담소 관계자가 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황선윤 기자

지난 23일 오후 부산성폭력상담소 관계자가 오거돈 전 시장 성추행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황선윤 기자

 오 전 시장은 2018년 7월 1일 취임 이후 기거한 부산 수영구 남천동 관사는 물론 해운대구 자택(아파트)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사퇴 이후 관사의 짐도 외부로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오 전 시장은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및 직권남용 등 혐의로 형사입건돼 피의자 신분으로 곧 소환조사를 받을 전망이다. 부산지방경찰청은 여성청소년과장을 수사총괄 팀장으로 두고, 수사전담반·피해자보호반·법률지원반 등 총 24명으로 전담팀을 꾸려 수사에 돌입했다. 부산 경찰 관계자는 “오 전 시장 측에 경찰 출석을 통보하고 3차례 출석 통보에도 불응하면 체포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성폭력 사건 수사는 피해자 진술을 우선 확보한 뒤 가해자 조사를 하기 때문에 경찰은 사전 피해자 조사를 할 예정이다. 경찰은 “피해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철저한 수사로 위법사항이 확인되면 엄정하게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