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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김종인 저녁회동 불발…"여러 상황 있어 못 만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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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래통합당 당직자들이 23일 국회에서 총선 참패 원인과 수습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미래통합당 당직자들이 23일 국회에서 총선 참패 원인과 수습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미래통합당의 대표 권한대행인 심재철 원내대표는 23일 저녁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과 만난다고 예고했다.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달라고 공식 제안하는 자리였다. 이날 오후엔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이날 밤 기자들에게 “심 원내대표를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심 원내대표를 볼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엔 “별 관심이 없다”며 “여러 가지 상황이 있어서 못 만난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전화통화만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심 “비대위장 제안 자리” 회동 예고 #김 “ 별 관심 없다” 전화통화만 한듯 #무제한 전권 놓고 갈등 가능성 #일각 “만남 여부 결정적 변수 아니다”

심 원내대표의 의도대로 굴러가는 건 아니라는 걸 드러내는 정황이다. 심 원내대표는 그동안 ‘김종인 비대위’ 드라이브를 걸었다.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결론을 내려다 의원들이 반발하자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시도했고 이후엔 현역 의원·당선인(142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여론조사 형태로 22일 결정지었다.

수습 국면처럼 보이던 게 다시 요동친 건 김 전 위원장이 전권을 가지고 대선 관리까지 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23일에도 당 안팎에선 “남에게 맡기기만 하는 당의 미래가 있을까”(김영우 의원), “이는 식민통치를 자청하는 것과 같다. 의원·당원이 선출하는 원내대표, 당 대표도 임기가 있는데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비대위원장이 무제한 임기를 요구하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가”(조해진 당선인)란 반발이 나왔다. 김종인 비대위에 찬성했던 홍준표 당선인도 “아무리 당이 망가졌기로서니 기한 없는 무제한 권한을 달라는 것은 당을 너무 얕보는 처사”라고 했다.

이에 비해 재선이 되는 당선인들은 별도로 모여 “최고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더 이상 분란을 만들면 안 된다”고 비대위 결정에 동조했다. 하지만 이들도 김 전 위원장의 ‘무기한 전권’ 요구에 대해선 입장을 유보했다.

김종인. [뉴시스]

김종인. [뉴시스]

이런 기류 때문인지 심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전권은 대표의 권한이고, 무기한 비대위도 아니다”고 말했다. 또 김 전 위원장이 7~8월 전당대회를 치르기 위한 임시적 비대위를 거부했을 뿐, 무기한 임기를 요구한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김 전 위원장과 심 원내대표 간 회동이 이뤄지지 않은 걸 두고 ‘김종인 비대위’로의 이행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비대위의 성격과 권한을 놓고 통합당과 김 전 위원장이 접점을 찾지 못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통합당은 당초 이날 김 전 위원장이 직을 수락할 경우 28일 전국위를 열어 비대위 체제 전환을 확정하려고 했었다. 다만 일각에선 “어차피 전국위에서 비대위원장을 선출하는 것이라 오늘 만남 성사 여부가 결정적 변수는 아니다”란 분석도 있다.

사실 지난 4년간 통합당에서 비대위 체제는 ‘뉴노멀’이었다. “비대위가 습관이 된 느낌마저 든다. 가건물로 4년을 지내 왔다”(조해진 당선인)는 토로가 있을 정도다. 2016년 20대 총선 패배 이후 1년에 한 번꼴로 비대위 체제였다. 2016년 총선 패배 후 새누리당에선 김희옥 비대위가 들어섰으나 친박계와 비박계의 다툼 속에 묻혔다.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통과 후엔 인명진 비대위가 가동됐으나 친박계의 반발과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의 탈당에 무력화됐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 이후엔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가 구원등판해 7개월간 당을 이끌다 황교안 대표 체제 출범과 함께 물러난 일도 있다.

이번의 진통은 통합당이 비대위를 꾸리는 과정조차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로 곤궁한 처지임을 드러낸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손국희·윤정민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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