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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교원 정치단체 가입 길 열었다…"정당 가입까진 아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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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입장해 자리하고 있다. [뉴시스]

헌법재판소가 초‧중등학교 교육공무원의 정치단체 가입 길을 열었다. 다만 교원이 특정 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된다는 기존 헌재 결정을 이어갔다.

“정치단체 의미 불명확”…가입 금지는 위헌 

23일 헌재는 국가공무원법 중 ‘초‧중등학교 교원이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는 부분이 헌법에 위반한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정치단체의 의미가 불명확하다고 봤다. 단체의 목적이나 활동에 관한 어떠한 제한도 없는 상태에서 ‘정치단체’와 ‘비정치단체’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교원이 가입한 단체가 원래는 사회적 문제에 지지‧반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지 않았더라도 교원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도 정치단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규제할 수 있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또 정치단체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해 교원이 단체에 가입하는 것을 스스로 꺼리게 되는 효과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 가입 금지, 교원 정치적 중립성 보장” 합헌 

곽노현(왼쪽부터) 전 서울시교육감과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인 강민정 서울시교육청 혁신학교운영위원장 등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교사의 정치단체 결성 관여 및 가입 행위를 금지한 조항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 선고가 끝난 뒤 나서고 있다. [뉴시스]

곽노현(왼쪽부터) 전 서울시교육감과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인 강민정 서울시교육청 혁신학교운영위원장 등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교사의 정치단체 결성 관여 및 가입 행위를 금지한 조항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 선고가 끝난 뒤 나서고 있다. [뉴시스]

반면 ‘초‧중등 교원이 정당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가입하는 행위를 금지’한 정당법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초‧중등 학생들에게 교원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교원의 정치활동은 학생으로서는 수업권의 침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정당가입 금지 조항으로 얻는 공익이 이로 인해 제한받는 사익에 비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3:3:3으로 나뉜 헌법 재판관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번 결정은 “교원의 정당 가입까지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3인의 재판관과 “정치단체 가입도 막아야 한다”는 3인의 재판관, “정치단체는 가능하지만 정당은 안 된다”는 3인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이석태, 김기영, 이미선 재판관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대학 교원과 차별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교원의 정당 가입 부분 역시 위헌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대학 교원은 정당의 설립‧가입이 가능한 것과 비교할 때 초‧중등 교원을 달리 취급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재판관은 정치단체의 의미가 불명확하다는 데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정치단체’를 일일이 구체적이고 확정적으로 미리 열거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일반적인 개념을 사용했을 뿐 지나치게 포괄적인 입법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봤다. 또한 “교원이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반대하는 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하는 경우 교육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한 이은애 대법관은 진보로 분류됐지만 이 건에선 보수 성향 재판관들과 의견을 같이했다.

결국 정치단체 가입은 허용할 수 있지만 정당 가입은 안 된다는 의견을 가진 유남석, 이영진, 문형배 3명의 재판관에 의해 이번 헌재의 판단이 결정된 셈이다. 이들도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이번 결정에선 중도적 입장을 보였다.

“획기적인 결정”…교사 정치적 표현 자유로워지나 

전문가들은 교사의 정치적 표현이 자유로워지는 결정이라고 해석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단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이란 말이 상당히 오염됐다. 정치는 민주사회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반적인 활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근무 중인 현직 부장판사 역시 “상당히 획기적인 결정”이라며 “교사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해주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교원을 넘어 다른 공무원 직군에도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후속 입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영·박태인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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