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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의 코로나 대응···야쿠자는 숨고 마피아는 금융거물 됐다

중앙일보

입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을 틈타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음식 나눠주며 대출 권유하기도 #어려워진 기업에 돈 빌려주며 충성 유도 #실업자 꼬드겨 마피아의 '보병' 만들 수도

19일 CNN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는 기간 갈취와 같은 전통적인 마피아 활동은 타격을 받지만 대신 코로나를 틈타 다른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는 18일(현지시간) 기준 코로나 19 누적 사망자 수가 2만3000여명을 넘었고, 누적 확진자 수도 17만 5000명을 돌파할 만큼 코로나의 타격을 크게 입은 국가다.

특히 마피아들은 남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코로나바이러스로 생활이 어려워진 이들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CNN은 보도했다. 이탈리아 마피아와 관련된 서적을 출간한 저널리스트인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CNN에 "코카인 밀매상들은 항구와 공항에서 감시·감독이 소홀해진 틈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책이 출간된 이래,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어 현재는 이탈리아를 떠나 있는 상태다. 현지 언론인들이 마피아 관련 보도를 한 뒤 협박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코로나 19 상황을 틈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경찰이 마피아 그룹을 체포하면서 확보한 각종 무기류. [AFP=연합뉴스]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코로나 19 상황을 틈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이탈리아 경찰이 마피아 그룹을 체포하면서 확보한 각종 무기류. [AFP=연합뉴스]

마피아들은 코카인 밀매 이상의 일도 벌이고 있다. 프란코 가브리엘리 이탈리아 경찰청장은 "농업-식품 유통망, 의약품 및 의료기기 공급, 도로 운송 등 이탈리아 경제 일부에 마피아 조직이 깊이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마피아는 장례식 업체에 투자하고 있으며 병원에서 나오는 세탁물을 처리하는 클리닝 업체에도 투자했다. 유럽 전역에 마약 유통망을 갖춘 마피아 중에는 피자집을 자기네 전선으로 활용하는 이들도 있다. 마피아의 투자 목록에는 부동산·주유소·운송업체 등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 19로 인해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들에 돈을 빌려주고 나서 점차 그들을 장악하는 게 마피아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CNN은 "식당이나 호텔 같은 업종이 특히 취약하다"고 짚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위기가 마피아를 이탈리아의 가장 큰 은행으로 만들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마피아가 정부보다 먼저 선수를 쳐서 기업들에 대출을 해주면 이자까지 붙은 금액으로 마피아 사업자 주머니에 돈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CNN은 "마피아는 경기부양 자금인 수십억 유로 중 일부를 빼돌릴 계획이 있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동네에서 생활필수품을 제공하면서 환심을 사는 일도 있다. 영국 가디언은 "마피아들이 서민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면서 대출 등을 권유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한산해진 이탈리아 로마의 한 거리. [EPA=연합뉴스]

코로나 19로 인해 한산해진 이탈리아 로마의 한 거리. [EPA=연합뉴스]

이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업체들에게 현금을 공급함으로써 '충성'을 끌어내는 게 마피아의 목적이다. CNN은 "국가가 효율적이지 않다는 걸 보여줘서 마피아가 스스로를 '승리한 모델'로 내세우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2012년 유럽발 금융위기 때도 이탈리아 마피아는 약 650억 유로(약 85조 73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온라인 도박과 마약 거래 등으로 상당한 유동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CNN은 코로나 19 위기로 인해 새롭게 '실업자'가 된 이들이 자칫 마피아의 '보병'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는 20대 초반 이탈리아인의 25%가 취업상태도, 교육훈련 상태도 아닌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가운데 이달 초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행병의 시기 동안 신께서 마피아, 고리대금업자들의 마음을 건드리시고 이들의 생각을 바꿔주시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코로나 19와 관련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은 최근 "신께서 마피아와 고리대금업자의 생각을 바꿔주시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AFP=연합뉴스]

코로나 19와 관련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은 최근 "신께서 마피아와 고리대금업자의 생각을 바꿔주시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AFP=연합뉴스]

한편 비슷한 범죄집단임에도 일본 폭력단(야쿠자)은 집단 감염을 우려해 대부분의 모임을 취소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령자가 코로나 19에 취약하다는 것이 알려지며 고령인 두목이나 조직 간부의 감염을 우려해 모임을 삼간다는 것이다.

슈칸분슌 온라인판은 "폭력단을 둘러싼 환경은 코로나 감염 위험이 높은 '밀폐·밀집·밀접'의 '3밀'에 해당한다"면서 "사무실에 당번제가 있고 간부는 조직원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사무실에 나오도록 종용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일본 폭력단 관계자가 코로나 19에 감염돼 그의 수행 운전기사를 비롯한 6명이 입원해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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