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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포퓰리즘 바이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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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전국 상당수 자치단체는 긴급재난지원금(코로나 지원금)을 정부와 중복으로 지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주저앉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자체도 나서야 한다고 한다. 수도권 등을 중심으로 돈 풀기 경쟁은 전국에서 치열하다.

부산 서구, 강원도 홍천군, 부산 동구 등 재정자립도가 20% 이하인 자치단체도 1인당 5만~30만원을 주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정부는 소득 하위 70% 구간(1400만 가구)에 최대 100만원을 지급한다.

하지만 돈 풀기 경쟁의 내용을 보면 간단치 않다. 대전시의 경우, 가구당 최고 70만원의 ‘대전형 긴급재난생계지원금(생계지원금)’을 마련했다. 여기에다 정부 재난지원금·돌봄쿠폰 등을 다 받으면 최대 240만원의 혜택을 본다.

대전시청 전산교육장에 마련된 대전형 긴급재난생계지원금 온라인 접수 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뉴스1]

대전시청 전산교육장에 마련된 대전형 긴급재난생계지원금 온라인 접수 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뉴스1]

대전시는 최근 정부보다 먼저 생계지원금을 주기 시작했다. 관련 예산 700억원은 재난관리기금(1350억원)을 빼서 쓴다. 주로 물난리 등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사용해온 돈이다. 올해는 코로나19 대처에만 지금까지 1105억원을 쓰기로 확정했다. 여기에는 방역비 등 다른 코로나19 관련 비용도 포함돼있다. 결국 재난관리기금 대부분을 소진한 상태여서 다른 긴급 사태가 생기면 뾰족한 대책이 없다. 경남 등 다른 지자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난관리기금 중 꼭 남겨둬야 할 예치금(15%)마저 코로나19 에 쓰라는 지침을 내렸다.

문제는 또 있다.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국비로 80%만 지원하고, 20%는 지자체에 할당하기로 했다. 대전시 예상 할당액은 약 600억원이다. 대전시는 절반인 300억원은 5개 구청이 분담하길 원하고 있다. 각 구청은 재정난을 이유로 난색을 보인다. 대전시는 “앞으로 쓸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해 정부 할당액을 모두 시에서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부터 지자체 살림살이는 빠듯했다. 부동산 규제 등에 따른 세금수입 감소, 현금 복지 확대 등이 한몫했다. 세종시만 해도 지난해 세금 수입은 400억원 줄었다. 부동산 거래량과 주택 입주물량 감소가 요인이다. 세종시는 지난 1월부터 직원 시간외 수당을 20% 이상 깎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들어갔다. 재난지원금도 자체적으로 마련하려다 정부가 준다고 하자 포기했다. 세종시 올해 예산 증가분 500억원 가운데 노인 일자리·아동복지 등 복지 분야는 76.2%(381억원)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돈 풀기 경쟁은 지자체 재정 악화에도 기름을 붓는 양상이다. 무차별 복지에 대한 저항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요즘 관심사는 돈을 얼마 받을 수 있는지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무섭다는 ‘포퓰리즘 바이러스’가 몰려오고 있다.

김방현 대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