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 각국이 ‘마스크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체코ㆍ슬로바키아ㆍ오스트리아 등 중유럽 국가에서의 마스크 의무 착용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에서다.
◇"마스크 착용자 비웃었다" 참회
‘전 국민 마스크 착용’은 체코가 선두주자다. 체코 정부는 지난달 19일부터 외출 시 마스크를 쓰거나 스카프로 코와 입을 가리도록 의무화했다. 홀로 운전할 때, 2세 이하 유아의 경우만 예외로 인정했다.
체코 보건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고 있다. 홍보물에선 내레이터가 “정말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보면 비웃었다”고 고백하면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마스크 효과’를 설명한다. “마스크를 살 수 없으면 수제 마스크라도 쓰라”는 호소도 나온다.
지난 6일 현재 체코의 신종 코로나 확진자는 4828명, 사망자는 80명이다. 1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이탈리아ㆍ프랑스ㆍ스페인과 비교하면 피해가 매우 적은 편이다.
◇온전한 대통령 얼굴 보기 어려워
이웃국 슬로바키아의 상황도 비슷하다. 지난달 21일 새 정권이 들어선 슬로바키아에선 주사나 차푸토바 대통령의 온전한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 취임식 당일부터 각료 전원이 마스크를 쓰고 나와서다.
앵커들이 마스크를 쓴 채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할 정도로 사회 전체가 열성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슬로바키아에선 지난달 31일 첫 신종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다. 이후 1명이 더 숨져 6일 현재 사망자는 2명으로 집계됐다. 확진자는 581명이다.
◇‘복면금지법’보다 ‘일상 회복’이 우선
이들 국가에 비해 다소 늦게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뛰어든 오스트리아도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슈퍼마켓ㆍ약국 등에 갈 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시행에 들어간 외출 제한에 이은 조치였다.
그 결과 한때 하루 1000명을 넘던 확진자 수는 200명대로 줄어들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런 성과를 토대로 다음달 1일부터 대형 상점 등의 영업을 재개할 방침이다.
사실 오스트리아가 이런 조치를 시행하기까진 고민이 깊었다. 3년 전 치안 문제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는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마스크 착용이 우리 문화와 이질적인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한시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국민이 단결해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 한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미국과 ‘중국산 마스크’ 쟁탈전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마스크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양측간 마스크 쟁탈전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8일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등에 따르면 미국이 세계 최대 마스크 생산국인 중국에서 시장질서를 교란시킬 정도다. 중국 업체가 이미 유럽과 수출 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미국 업자가 뒤늦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물량을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 내에서도 마스크를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하다. 최근 스웨덴의 의료용품 업체인 멘리케가 겪은 사연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멘리케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의료진들에게 마스크를 기증하기 위해 경유지인 프랑스에 마스크를 보냈다. 그런데 프랑스 당국이 마스크 금수 조치를 이유로 마스크를 전량 압수해 버렸다.
멘리케 측은 프랑스를 강력히 비난했다. 결국 스웨덴 정부가 프랑스 정부와 교섭에 나선 뒤에야 마스크 기증은 정상화됐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