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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메데이아, 포스터, 지선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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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동굴 안, 분노한 여인이 입구 쪽을 바라본다. 두 아이를 품에 안고 있다. 왼손에는 단검을 쥐었다. 여인은 코린토스인에게 쫓기고 있었다. 겁에 질린 아이 표정.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1862년 작품 ‘격노한 메데이아’(Médée furieuse)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그림 속 여인이 메데이아다. 그리스 신화에서 복수의 상징이며 마녀다. 아이들은 곧 단검에 찔려 목숨을 잃을 운명이다.

그리스 신화 일부 전승에선 두 아이가 메데이아 손에 죽지 않는다. 대신 메데이아에게 분노한 사람들 손에 죽는다.(그들이 분노한 이유는 뒤에 나온다)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와 함께 그리스 3대 비극작가로 불리는 에우리피데스는 메데이아 이야기를 작품으로 썼다. ‘눈물을 흘리며 나는 내가 저지를 참혹한 일을 생각한다/내 아이들을 죽여야만 하는 내 숙명이여/(…)/이아손은 이제 내 몸으로 낳은 이 아이들을/살아있는 모습으로는 결코 다시 보지 못하리라/새 신부도 그에게 새 아이들을 낳아주지 못하리라/그녀는 이제 곧 죽어야 할 목숨이니까’.

메데이아는 콜키스 왕 아이에테스의 딸이다. 즉, 공주다. 황금 양모를 구하는 이아손을 돕고 그와 결혼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조국을 배신했다. 심지어 남동생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바다에 유기했다. 남편 부모의 원수를 갚는 데도 발 벗고 나섰다.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듯했다. 이아손은 그런 아내를 버리고 코린토스 크레온 왕의 딸 글라우케와 결혼하려 했다. 분노한 메데이아는 글라우케와 크레온 왕을 살해하고, 두 아이마저 죽여 남편에게 복수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는 후대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했다. 영국 극작가 마이크 바틀릿은 2012년 ‘메데이아’를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이를 모티브로 TV 드라마도 썼다. 2015년 영국 BBC1에서 방송한 ‘닥터 포스터’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여의사의 복수 스릴러다. ‘닥터 포스터’가 원작인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시청자가 몰린다. 주인공인 의사 지선우(김희애 분)에 공감하는 아내들. 드라마를 보다가 혹시 “당신은 아니지”라고 남편에게 묻고 싶지 않은가. 대신 메데이아 얘기를 들려주시라. 남편들 표정은 어떠한가.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