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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직장 에쓰오일이 희망퇴직 설명회를…대체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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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실적 부진에 신용등급 전망 하락

에쓰오일 본사 모습. 중앙포토

에쓰오일 본사 모습. 중앙포토

고연봉에 실적 좋고 잘 나가기로 소문났던 정유기업 에쓰오일(S-Oil)이 사면초가다. 실적 부진과 재무건전성 악화에 업황마저 불리해졌다.

지난 31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에쓰오일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려 조정했다. S&P는 이유에 대해 “(원유) 수요 둔화와 거시 환경 악화로 인해 향후 12개월간 S-Oil이 상당한 실적 압박과 재무지표 약화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 영업환경 악화가 큰 폭의 실적부진으로 이어지고 내년 회복 여부도 불확실성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유사업 비중 80%…실적 타격 커

가장 큰 악재는 정유업계 전반에 닥친 수익성 악화다. 정유사의 핵심 수익지표인 정제마진은 지난해 9월 배럴당 7.7달러에서 연말 –0.1달러로 떨어지더니 3월 셋째주 –1.9달러까지 추락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정유사가 만드는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구입가격을 뺀 것으로, 4달러 아래로 내려가면 정유사가 손해를 보는 구조다.

특히 에쓰오일은 사업 가운데 정유부문 비중이 80%에 달해 정제마진 하락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 30일 공시된 연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지난해 정유부문이 253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전체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34.3% 급감한 4201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률도 1.7%로, SK이노베이션·GS칼텍스·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 가운데 유일하게 1%대를 기록했다. 나머지 3사의 영업이익률은 2.5~2.6% 수준이다.

S-Oil 실적 및 부채비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S-Oil 실적 및 부채비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투자 타이밍이 안좋았다"…부채 규모 10조원 육박 

부채는 계속 늘어 재무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에쓰오일의 부채비율은 2015년 100.3%에서 지난해 151.4%로 4년 사이 51.1%포인트 올랐다. 이 기간 부채 규모도 5조4056억원에서 9조8368억원으로 무려 82% 늘었다. 이와 관련 S&P도 “S-Oil의 부채비율이 향후 12~24개월 동안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대표가 지난 12월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2019 영웅소방관 시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대표가 지난 12월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2019 영웅소방관 시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회사의 재무건전성 악화는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국제유가와 환율 등에 큰 영향을 받는 정유사업 비중을 줄이기 위해 석유화학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된 후세인 알 카타니 에쓰오일 대표는 ‘정유에서 석유화학사업으로의 대전환’을 선포한 장본인이다. 회사는 2015년부터 석유화학 1단계 프로젝트인 잔사유 고도화시설(RUC)과 올레핀 다운스트림시설(ODC)에 약 4조8000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고유황유인 벙커C유를 고부가가치제품인 저유황유로 고도화하는 설비로 국내 정유·석유화학 분야 사상 최대 투자규모다. 하지만 2018년 업황 부진이 시작되면서 이익은 감소하는데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며 부채비율이 오르고 재무건전성이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수요 없는 ‘치킨게임’으로 유가 급락 

엎친데 덮친격으로 수요와 공급까지 엇박자를 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원유 수요는 줄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간 유가 치킨게임으로 원유 공급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다니엘 예르긴 부회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다음 달 세계 원유 수요는 하루 2000만 배럴이 줄어들 것”이라면서 “이는 금융위기 기간 발생한 원유 수요 감소폭의 6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 국제유가는 18년 만에 배럴당 20달러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에쓰오일로선 높은 가격에 구매한 원유재고평가 손실을 떠안는 동시에 저유황유 가격마저 급락해 거액을 투자한 설비에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손지우 SK증권 연구원은 “유가급락으로 인한 정유사업부의 재고 효과(Lagging Margin)와 재고평가 모두 대폭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에쓰오일이 1분기에 시장 전망치보다 큰 5218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전망이고 실적개선 여지도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배당 규모도 줄인다

급격한 실적악화를 타개하기 위해 에쓰오일은 재무건전성 개선에 골몰하고 있다. 당장 지난해 배당금을 보통주 기준 1주당 200원으로 전년(750원) 대비 73.3% 줄였다. 배당 규모가 줄어들면서 그동안 고배당주로 꼽혀온 주식 매력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5조원에 이르는 1단계 투자에 이어 2024년 가동을 목표로 7조원을 투입해 지으려던 에틸렌 생산 설비 프로젝트도 코로나 19로 사우디 아람코 본사의 투자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 1976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희망퇴직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에쓰오일 관계자는 “직원들을 상대로 설명회는 했지만 시행에 들어가지는 않았다”라며 “국제경기가 회복돼 수요가 살아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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