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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시네마 천국을 급습한 방구석 1열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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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디렉터

이후남 문화디렉터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이라는 영화 팬들의 오랜 취향도 맥을 못 춘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급감한 국내 극장 관객 수는 언제쯤 회복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미국은 더 심각하다. 1, 2위 극장 체인 AMC와 리갈 모두 미국 전역에서 아예 문을 닫았다.

안방극장, 일명 방구석 1열은 사정이 다르다. 뉴스에 관심이 높아진 데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TV 시청률은 전반적으로 올랐다. 뜻밖의 히트작도 나온다. 9년 전 국내 관객 22만명에 그친 ‘컨테이젼’은 최근 온라인에서 그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았다. 신종 바이러스 확산을 다룬 영화 내용이 요즘 상황과 맞아 떨어져 입소문을 탄 덕분이다. 온라인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는 유럽에선 한 달간 화질을 떨어뜨려 전송하기로 했다. 그 정도로 이용자가 급증했다는 얘기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의 리갈 극장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문을 닫은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의 리갈 극장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문을 닫은 모습. [AP=연합뉴스]

미국 대형 영화사 중에는 유니버설이 빠르게 움직였다. ‘인비저블맨’ 등 극장에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신작을 온라인에 풀고, 4월 개봉할 애니메이션은 온라인에 동시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달리 극장과 온라인 사이에 90일 간격을 두는 미국 시장의 관행을 단숨에 깬 것이다. 한국영화도 기약 없이 미뤄진 극장 개봉 대신 온라인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나왔다. 다음 달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하는 ‘사냥의 시간’은 본래 2월 말 개봉하려던 영화다. 젊은 스타들이 여럿 출연하고 베를린 영화제도 초청받아 주목을 받아왔다.

이대로라면, 극장의 빼곡한 관객 틈에서 영화를 보던 기억은 그저 추억거리로 남게 될까. 어린 토토와 나이든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우정을 그린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건물 외벽에 영사기를 비추자, 마을 광장이 극장이 돼버린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영화를 볼 수 있다면 극장이다. 기존 극장 관객을 주된 수입원으로 삼아온 영화산업도 과거 TV나 비디오 같은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했을 때 그랬듯, 해법을 찾을 것이다.

극장 나들이를 고대하는 건, 영화산업을 걱정해서가 아니다. 관객이 늘어난다는 건 코로나19 이전의 삶이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것, 일상이 안전해졌다는 신호다. 다른 관객들의 웃음소리, 비명소리를 들으며 코미디나 공포영화를 즐기고, 이제 막 스크린에 펼쳐질 새 영화에 대한 무언의 기대감을 나누는 체험으로서 극장 나들이가 그립다. 그때쯤이면, 요즘 국내 극장에서 하는 한 줄 띄어 앉기가 사라져 뒷자리 관객의 발길질에 짜증이 날지도 모르지만.

이후남 문화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