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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올라야 할 건강진단

중앙일보

입력

어릴 때 서울로 올라와 경제적으로 제법 성공한 50대 중반의 오아무개씨는 최근 일류로 손꼽히는 한 종합병원의 건강검진센터를 찾았다.

특별히 아픈 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건강 하나를 자부심으로 살아왔기에 몸이 좀 이상하다는 느낌조차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첨단의학이 자신의 건강에 보증수표를 달아주길 바랬다. 수십만원하는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까지 하느라고 100만원대의 목돈이 들어갔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오씨의 기대와는 다른 쪽으로 흘러갔다. 심장이나 위·간 등은 정상인데, 척추에 디스크 돌출증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50대 중년에겐 흔히 있는 퇴행성 질환이라고 설명했지만 `아는 게 병´이 됐다. 요즘 오씨는 왠지 허리가 아프다는 느낌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둘째 사례.

최근 한 일간지 독자투고란에 소개된 충남 홍성군의 직장여성 김아무개씨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담배라고는 피워본 적이 없는데 직장의료보험의 건강검진을 받은 뒤 “흡연이 지나치니 자제해 달라”는 의사소견 통보를 받은 것이다. 결과가 잘못 통보된 게 아닌가 싶어 몇번이나 확인했지만 틀림없었다. 의료행정 착오려니 하고 자위했지만 의보 건강진단에 대한 불신을 지울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사례는 우리나라 건강검진의 현주소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대형병원 종합건진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검사를 하는 때가 많고, 의보건진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의보건진은 만 40살 이상의 직장의보 피부양자와 지역의보 피보험자를 대상으로 한 성인병 건진과, 직장의보 피보험자를 대상으로 한 직장 건진으로 나뉜다. 의료보험연합회 통계에서, 지난 97년에 성인병건진은 대상자 459만 중 95만명(20.7%)이, 직장건진은 대상자 283만명 중 241만명(85.1%)이 각각 수검에 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두가지 건진은 대상이 다를 뿐 검사항목의 차이는 거의 없다. 키 몸무게 혈압 등 기초체력을 측정하고 흉부방사선 간접촬영, 소변검사, 혈액검사 등 20여가지를 1차 검사에서 실시한다. 1차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2차 검사를 실시한다. 폐에 이상이 발견되면 2차에선 흉부방사선 직접촬영, 결핵균 집균도말검사 등을 추가로 실시하는 식이다.

반면에 대형병원 종합건진은 통상 위내시경, 초음파검사를 포함해 80여가지 항목의 검사를 기본 패키지상품으로 운영하고, 컴퓨터단층촬영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 등 정밀검사를 옵션으로 내놓아 수검자의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

의보건진이 `수박 겉핥기´라는 비판은 일단 검사항목이 적은 데서 비롯되지만, 건진기관의 상업성이 더 큰 문제라는 게 의료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1차 건진이 대충 이뤄지면서 `질환의심´ 판정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이런 모순의 집합으로 보인다.

97년의 경우 직장건진을 받은 피보험자 241만2천명의 23.5%인 56만8천명이 질환의심 판정을 받았는데, 이 가운데 42만명이 2차 건진에 응해 15만명이 `질환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1차 때 질환의심을 판정받은 사람 가운데 60% 이상이 `오판´을 받은 셈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비싼 돈을 들여 대형병원 종합건진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건진기관들은 1차 건진 의보수가가 1인당 2만원대(여성은 최대 3만4천원)로 낮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상당수 건진 전문기관들은 `물량´을 대거 확보하는 상업적 수완을 발휘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병원의 종합건진은 검사항목이 월등하게 많은 만큼 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만, 가격이 비싸고 때로는 필요없는 검사까지 해 의료자원이 낭비된다는 문제가 있다. 기본 패키지상품만 해도 가격이 20만~40만원대로 의보건진의 10배 이상이지만, 실제로는 비싼 옵션 검사가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보통이라는 게 건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의보 1차 건진의 검사항목을 조금 늘리면서 정밀한 검사를 실시해 `질환의심´ 판정을 남발하지 않도록 하고, 자연스레 종합건진의 수요도 줄여가야 한다는 의견이 예방의학쪽에서 일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의보재정에 부담을 지우는 일인데다, 투자한 만큼 질병의 조기발견이 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좀더 정밀한 전국민 대상 의보건진을 실시하고 있으나, 최근 의보재정 부담과 의료 가수요 등의 부작용이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수검자가 전문의와의 상담과 문진을 통해 건진 항목을 정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그럴 경우 10만원대의 비용으로 충분한 건진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안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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