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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재판받는 여권 인사들의 총선 출마, 유권자 우롱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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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 수사를 받고 있거나 기소된 인사들이 여당 간판을 달고 4·15 총선에 출마하는 기막힌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기소된 핵심 피고인들이 줄줄이 민주당 경선을 통과했다. 유권자를 우롱하고 법치에 거스르는 공천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황운하(대전 중구) 전 울산 경찰청장과 한병도(전북 익산을) 전 청와대 정무수석, 임동호(울산 중구) 전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야당 후보인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표적 수사에 개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특히 황 후보자가 청와대의 하명을 받아 김기현 후보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표적 수사를 지휘, 선거 판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이라면 공권력을 남용한 선거 공작이자 중대 범죄다. 임 후보자는 청와대로부터 고위직 자리를 제안받고 울산시장 출마를 포기했다는 의혹을, 친구 사이인 한 후보자는 이를 조율하는 데 관여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공천을 대가로 한 추악한 조직적 뒷거래란 의심을 받는 이유다.

물론 현행법상 ‘피고인’의 총선 출마를 막는 규정은 없다. 법원의 최종 판결 전까진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선거부정 사건이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런 의혹에 연루돼 수사와 재판의 대상이 되고,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것만으로도 우선 자숙하는 게 도리다. 법의 심판대에 서 있으면서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손을 내미는 건 보통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몰염치한 행보다.

조국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비례대표 사퇴 시한인 16일 사표를 낸 걸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최 전 비서관은 변호사 시절 조국 전 법무장관의 아들에게 인턴확인서를 허위 발급해 준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50일 넘게 비서관 자리를 유지해 오다 갑자기 “날치기 기소”라고 검찰을 비난하며 사표를 냈다. 친여 성향 정당의 비례대표 출마설도 나돈다.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 역시 도리와 이치에 맞지 않는 행태다.

재판 중인 여당 인사들의 무더기 총선 출마는 여지껏 헌정사에 없던 일이다. 자칫 검찰 수사를 조롱하고 공권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선 조국 사태와 울산 사건 등을 거치면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충돌한 여권이 총선 승리를 통해 수사·재판의 새판짜기를 시도할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있어서도 안 되고, 이룰 수도 없는 헛된 꿈이다.

재판 중인 후보자들의 공천은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마땅하다. 그게 공정과 정의를 앞세워 온 여당이 취해야 할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