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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번엔 70대 노인에게 해군기지가 뚫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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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해 해군기지. [사진 해군]

경남 진해 해군기지. [사진 해군]

지난 1월 70대 노인이 진해 해군기지를 무단으로 들어가 1시간 30분 동안 돌아다녔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또 16일 50대 남성이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방공진지 울타리에서 발견됐다. 이같이 군 기지에 민간인의 무단 침입 사실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군의 전반적 경계태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50대 남성는 땅파고 육군 방공기지로 #점심시간 70대 노인이 제지 없이 들어가 #해군, 경찰에 "기지 침입 없었다" 거짓말 #북한 목선 입항과 제주해군기지 침입 #국방장관 사과에도 잇따른 경계 실패

16일 해군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3일 낮 12시쯤 A(73)씨가 제1정문 앞에 나타났다. 당시 점심시간이라 많은 사람이 정문을 통과하던 참이었다. 위병소엔 기지방호전대 소속 군사경찰(헌병) 3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A씨는 아무런 제지 없이 기지 안으로 들어갔다. 출입증 검사를 맡은 병사가 때마침 전화를 받느라 그를 놓친 것이다. 나머지 2명은 출입 차량을 검사하느라 A씨를 보지 못했다. 진해기지는 해군의 교육사령부, 군수사령부, 잠수함사령부 등 주요 사령부가 자리 잡은 핵심 시설이다.

A씨는 이후 1시간 30분 동안 진해기지 안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는 사이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당일 오후 1시 30분쯤에서야 경계 초소에 근무하던 한 병사가 A씨를 발견했다. 해군 조사결과 A씨는 대공 용의점이 없었다. 지인과 연락한 끝에 A씨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해 6월 15일 군경의 제지 없이 강원도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소형 목선. [중앙포토]

지난해 6월 15일 군경의 제지 없이 강원도 삼척항에 입항한 북한 소형 목선. [중앙포토]

오후 3시 43분쯤 해군은 A씨를 인근 충무 파출소로 보냈다. 해군 측은 당시 경찰에 “술을 마신 뒤 길을 잃은 상태로 기지 앞을 방황하고 있는 것을 군사경찰이 발견했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부대 침입은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해군은 또 이 같은 사실을 합동참모본부에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하는 군 소식통은 “무단 침입 사실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경계 실패를 질타하는 여론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해 경찰에 거짓 설명을 한 것”이라며 “해군 내부에선 당시 진해기지 측이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얘기도 떠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군 측은 “진해 기지는 당시 상황을 지휘부에 보고했다”며 “해군은 이번 사건과 관련,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있다. 해군본부 감찰팀을 현지 부대로 보내 부대출입 시스템 및 사후 조치 전반에 대해 정확하게 실태를 조사하고 재발 방지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찰에 A씨를 인계할 때 '술을 마셨다'라거나 '기지 침입 사실이 없었다'고 통보하진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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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낮 12시 40분쯤엔 수방사는 예하 방공진지 울타리 안에서 50대 남성의 신병을 확보했다. 그는 술에 취한 듯 횡설수설하면서 "나물을 캐러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이 남성은 울타리 밑에서 땅을 파 진지로 들어왔다. 수방사 측은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판단한 뒤 경찰에 그를 넘겼다.

군은 그동안 잇따라 경계작전에 허점을 보이면서 여론의 도마 위에 자주 올랐다. 지난해 6월 강원도 삼척항에 북한 소형 어선이 들어온 것을 놓쳤다. 지난 8일엔 민간인 2명이 제주 해군기지 철조망을 뚫고 들어가 1시간 30분 넘게 시위를 벌였는데도 이를 몰랐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7월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북한 소형목선 상황 관련 정부 합동브리핑에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7월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북한 소형목선 상황 관련 정부 합동브리핑에서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7월 3일 북한 소형 목선의 삼척항 진입에 대해 사과하면서 “경계작전 실패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과오”라며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계작전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보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 장관의 약속은 허언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은폐 의혹이다. 해군은 지난해 7월 2함대에서 거동수상자 허위 자수를 종용한 사실이 들통났다. 이번 진해기지의 경우도 보고를 누락하고 외부에 거짓말까지 한 것이다. 한 예비역 제독은 “전반적으로 최근 군 내부에서 경계 태세가 약해지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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