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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글쓰기 열풍…"우리에게 글쓰기는 취미 아닌 업(業)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임덕진(73)씨는 4개월째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평생 가슴에 품어온 문학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함민정 기자

임덕진(73)씨는 4개월째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평생 가슴에 품어온 문학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함민정 기자

취미가 아닌 ‘업(業)’을 위한 글쓰기에 도전하는 시니어가 늘고 있다. 신춘문예가 대표적이다. 올해 한 신춘문예에서는 62세 작가가 탄생하기도 했다. 최고령 등단이다.

전문작가 등단 위한 수업에 시니어 몰려 

은퇴 후 취미로 글을 쓰는 시니어들은 과거부터 꾸준히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전문적으로 글 쓰는 시니어가 늘어나는 양상이다. 전문 작가로서 책을 내거나, 등단을 위한 수업이 대표적이다.

혜화동에 위치한 한국시문화회관. 수강생들이 직업 작가가 되기 위해 수업을 듣고 있다. 함민정 기자

혜화동에 위치한 한국시문화회관. 수강생들이 직업 작가가 되기 위해 수업을 듣고 있다. 함민정 기자

대학로에 위치한 한국시문화회관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창작교실’이 열린다. 단순히 취미를 위한 강의가 아니라, 프로 작가가 되기 위한 글쓰기 수업이다. 지난 1월 30일 찾은 창작교실에서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수강생들의 열띤 토론과 창작 시간이 이어졌다. 이 수업 수강생 6명 중 5명이 60세 이상이다. 강의 관계자는 "최근 1~2년 사이에 시니어들을 위한 강의도 늘어나고, 수강생도 증가했다"며 "수강생들은 전문 작가가 되기 위한 꿈을 키워나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 달에 20만원의 수강료를 내야 하지만, 수강생들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윤동주처럼 멋진 글 남기고파"  

수강생 중에는 어린 시절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꿈을 늦게나마 좇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로 창작교실 수강생인 임덕진(73)씨는 "어렸을 때부터 문학 소년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계속 글을 쓰고 읽고 싶었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산업 염료 만드는 일부터 건어물 판매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며 "결국 은퇴한 이후에야 이곳에서 수업을 듣고 글을 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년이나 고민한 끝에 약 5개월 전부터 수업을 듣기 시작한 임씨는 부쩍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글을 통해 이게 나라는 것을 알리고 싶고, 좋은 글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며 "전문 작가가 되기 위한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청에서 열리는 글쓰기 창작 수업. 김모(64)씨는 "자서전을 쓰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강남구청에서 열리는 글쓰기 창작 수업. 김모(64)씨는 "자서전을 쓰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강남구청에서 운영하는 한 글쓰기 수업에 다니는 김모(64)씨는 은퇴 후 '아버지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유려한 글쓰기를 자랑하는 작가까지는 아직 멀겠지만, 아버지의 자서전을 내는 것이 1차 목표다. 그는 "아버지의 평범한 일상이 위대하게 느껴졌고, 그의 삶 자체를 잘 담아내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다"며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책을 출판할 용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로의 창작교실 수강생 박완규(61)씨는 집에서 수업 장소까지 오려면 3시간이 걸리지만, 궂은 날씨에도 수업을 빠진 적이 없다. 그는 1년에 책을 2권도 채 읽지 않을 정도로 문학과 멀었지만, 벌써 수강생이 된 지 1년 6개월이나 됐다. 박씨는 "등산을 하다 만난 한 시인이 '시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이 귀에 꽂혔다"며 "이제는 빠져나오려고 해도 빠져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박씨는 한국아동문학작가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였는데 이제 나에겐 다른 의미가 됐다"며 "윤동주처럼 멋진 글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한 명 한명이 다 자기 삶의 주인공"  

혜화동에 위치한 한국시문화회관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글쓰기 수업이 열린다. 60세가 넘는 시니어가 절반 이상이 된다. 함민정 기자

혜화동에 위치한 한국시문화회관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글쓰기 수업이 열린다. 60세가 넘는 시니어가 절반 이상이 된다. 함민정 기자

출판업계에 따르면 최근 1~2년 사이에 60대 이상 작가의 출간이 약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늘어났다. 이들이 이렇게 작가와 출간에 열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니어 대상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최성철(67)씨는 "누구나 나이가 들면 살아온 인생을 글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끝으로 최씨는 수업을 진행하며 "시니어 하나 모두 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었고, 소설의 주인공 같았다. 열정이 대단했다"고 했다.

함민정·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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