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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격리시설 만든다고 초급간부에게 '방빼라'는 軍

중앙일보

입력

경기지역 한 군 부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격리시설을 확보한다는 명목으로 초급 간부들에게 숙소 퇴거 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에 초급 간부들이 반발하자 해당 부대는 퇴거 대신 다른 방안을 찾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부대 내 반발 심하자 "퇴거 방안은 검토하지 않겠다" #"공간은 한정돼있는데 1인 1실 운용 어려워"

군 장병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활동의 일환으로 부대 방문 차량에 대한 발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군 장병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활동의 일환으로 부대 방문 차량에 대한 발열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군 당국에 따르면 경기 고양에 위치한 육군부대는 전날(12일) 원룸 형태의 독신자 숙소 1개 동 거주 인원 150여명에게 퇴거 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는 취지의 지침을 전달했다. 이 계획에는 해당 거주자들이 다른 간부 거주지에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는 방안, 또는 약 30분 거리의 기업 연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방안 중 선택해 오는 19일까지 퇴거를 완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부대는 신종 코로나 감염자와 의심환자를 위한 1인 1실 격리공간을 확보하는 데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퇴거 대상 후보로 지목된 간부들은 반발했다.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계획이 세워진 데다 초급 간부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였다. 해당 부대 한 간부는 “위에선 확정된 방안은 아니라고 하지만 군 위계상 사실상 일방 통보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위관급 이상 장교와 여성 간부가 거주하는 다른 2개 동은 그대로 둔 채 주로 부사관 등 초급 간부가 머무는 특정 동이 타깃이 됐다”고 말했다. 계약서를 쓰고 입주한 만큼 주거권 침해를 주장하며 단체 행동을 하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당 부대는 이 계획을 거둬들였다. 부대 측은 “신종 코로나 상황 장기화에 따라 선제적으로 예방적 격리 인원 수용시설을 준비하기 위해 독신자 숙소 퇴거를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했을 뿐”이라며 “일부 간부들의 불편 사안이 접수돼 해당 방안은 더 이상 검토하지 않고, 다른 부대 내 시설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관련 두 번째 긴급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관련 두 번째 긴급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국방부]

군 안팎에선 이번 일이 신종 코로나 격리시설 확보를 둘러싼 일선 부대의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인 1실 격리 원칙을 각 부대 여건에 맞게 운용하라”는 군 당국의 지침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지역 한 간부는 “지난 26일 인천의 한 부대에서도 초급 간부 퇴거 계획이 부대 내 반발에 철회된 적이 있다”며 “부대 입장에선 1인 1실 확보에 원룸 형태인 독신자 숙소를 활용하는 게 가장 손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공간을 찾지 못하다보니 일부 부대에선 1인 1실 격리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만드는 고육책이 등장했다고 한다. 공반기(한개 기수가 퇴소한 뒤 다음 기수가 입소할 때까지의 기간)인 신병 생활관에 응급실과 같은 비닐막으로 1인 공간을 만드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군 관계자는 “한정된 부대 내 공간에서 1인 1실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나 기준이 지금이라도 일선 부대에 하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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