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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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온 국민의 관심을 모았던 한국축구가 드디어 9O년 로마 월드컵대회 본선진출티켓을 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싱가포르 최종 예선전에서 월드컵 본선진출 못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 것이 있다.
지난 반세기 가까운 동안 둘이 맞섰다하면 으르릉대거나 아니면 처삼촌 보듯 냉랭하기만 했던 남북대결이 뜻밖에도 쓰러진 상대방 선수를 붙잡아 일으켜 주는 등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어 먼 이국 땅에서 동족애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것은 상대방 골 포스트에 한 골을 집어넣는 것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특히 지난 2O일 밤에는 한국과 중국전을 응원하러 왔던 3천여 한국교민들이 한국의 승리로 끝났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해서 벌어진 북한과 카타르 전에서 북한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렬히 응원해 주었다.
그 응원에 보답이나 하듯 북한은 카타르를 가볍게 물리치고 난 다음 선수 전원이 우리 교민응원단 앞에 찾아와 절을 하며 감사의 뜻을 표해 또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한국교육개발원은 25일 「통일· 안보 교육지침」안을 제시했다. 5개 분야에 걸쳐 10개 항목을 예시한 이 지침을 보면 가령 「북한이 미국 또
는 일본과 운동경기를 할 때 어느 편을 응원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그런데 그 해답이 놀랍다. 기본적으로는 스포츠 정신에 입각한 관전태도가 중요하지만 굳이 편을 들어야 한다면 이데올로기에 입각할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인 북한을 편드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 않다」 는 것이다.
남북 분단이후 「반공」 일변도의 학교 교육을 지향해온 우리의 현실에서 이 정도의 변모만으로도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이 지침은 남북 분단은 여러 가지 외세의 영향도 크지만 그에 앞서 우리민족의 역량이 부족했던 점을 시인하고 있다. 그리고 평양이 공해가 적고 깨끗한 도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살기 좋은 곳」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북한에 법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조직화되고 통제된 폐쇄사회임도 아울러 설명하고 있다.
늦은 감은 있으나마 이 「지공」 교육지침은 민족의 동질성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통일의 가장 빠른 길임을 인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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