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아들 이어 김용민까지···"코로나온다"로 본 '악질 농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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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막말 논란이 주목받고 있다. 유튜브·팟캐스트 등에 출연해 타인의 고통이나 사회적 약자를 유머 소재로 삼은 사례들이 비판의 표적이 됐다.

"코로나는 코로 나온다"

지난달 14일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아들 이모(38)씨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했다. 서울 강남구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그는 웃으며 “코로나는 코로 나온다”고 농담을 했다. 국내 확진자가 총 28명이던 시점이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재난안전대책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재난안전대책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 영상에서 이씨는 "아무 말이나 하려고, ‘코로나는 코로 나온다’ 뭐 이런 얘기 하려고 나왔는데”라며 웃었다. 그는 “(병원에 확진자가 다녀가면) 제 입장에서는 좀 쉬고 싶다”라고도 했다. 이씨는 서울 강남구의 한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미래통합당은 지난 4일 “전 국민이 코로나로 고통 속에 살지만 이씨에게 코로나는 우스개 개그 소재에 불과했다”며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이씨는 이 전 총리의 입장문을 통해 “깊이 반성하며 사과드린다. 방송 등 대외활동은 즉각 중단하겠다”고 했다. 이씨가 출연한 유튜브 채널 측은 “감염자를 조롱하려는 게 아니라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며 “사과 후 문제 영상을 내렸다”고 밝혔다.

김용민은 코로나 얘기하다 난임부부 농담까지

1월 26일에는 방송인 김용민씨도 팟캐스트에서 ‘난임 부부’를 소재로 농담하다 청취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당시 김씨는 본인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용민의 측면승부’에서 출연자들과 코로나19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김용민의 측면승부 팟캐스트 페이지에 달린 댓글 [팟캐스트 페이지 캡처]

김용민의 측면승부 팟캐스트 페이지에 달린 댓글 [팟캐스트 페이지 캡처]

당시 김씨는 출연자들에게 “의사가 되고 싶었던 분이 있냐”고 물었다. 한 출연자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에 김씨는 난임 부부 전문 병원인 ‘마리아병원’을 언급하며 “마리아가 애를 잘 낳는다. 가기만 해도 잉태를 한다”며 웃었다. 이어 난임병원에서 정자를 채취하는 과정을 묘사했다.

방송을 들은 팟캐스트 청취자들은 “웃으면서 할 얘기가 아니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자신을 불임 당사자라고 밝힌 한 청취자는 “불임과 난임을 개그 코드로 쓰다니 정말 불쾌하다”고 적었다. 이후 김씨는 자신이 출연하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과거 발언 논란 등이 이유였다.

"너 그냥 감기 걸린 거야" 해외에서도 코로나 농담 뭇매

지난 3일에는 영국 왕세손과 프랑스 방송국 '카날플러스'도 코로나19를 유머 소재로 삼았다.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윌리엄 왕세손은 ‘사람들이 코로나를 핑계로 일하고 싶지 않아 하고 누군가는 이를 말린다’는 취지의 농담을 여론의 반발을 샀다.

카날플러스는 피자 위에 초록색 가래가 있는 장면에 이탈리아 국기 색으로 쓰인 '코로나 피자'라는 자막을 방송에 내보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이탈리아를 표현한 것이다. 이에 이탈리아 외교부 장관은 "이탈리아가 긴급사태에 직면한 시기에 이런 식의 조롱은 매우 무례한 행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카날플러스 측은 "매우 나쁜 취향의 농담이었다"며 해당 프로그램 재방영분에서 '코로나 피자' 부분을 삭제했다.

카날플러스 방송에 나온 코로나 피자 [유튜브 캡처]

카날플러스 방송에 나온 코로나 피자 [유튜브 캡처]

"유력인일수록 유머와 막말 구분해야"

전문가들은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면 유머와 막말의 경계를 잘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유머의 소재를 잘 골라야 한다"며 "현저히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폭력적일 수 있는 말은 유머가 아닌 막말이 된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 교수의 농담에 대해 “전 총리의 아들인 것을 떠나 의사인 것 자체도 사회지도층이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모씨가 방송 전 진행자로부터 ‘재밌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국민이 기대하는 윤리의식을 못 갖춘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 교수는 “이런 유머는 일종의 혐오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권력 소재로 풍자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였다"며 "하지만 지금 유행하는 매체에서는 약자를 소재로 손쉽게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이 보인다"고 말했다.

편광현 기자 pyun.gw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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