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제4대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병율(60) 차의과대학교 보건산업대학원장이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 강제수사 지시를 비판했다. 추 장관은 지난달 28일 수사 의뢰가 없더라도 (신천지의) 보건 관련 불법행위 발견시 "압수수색을 비롯해 즉각적인 강제수사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검찰에 내린바 있다.
전병율 전 본부장 "신천지 교인들 도망갈까 걱정"
"秋장관 지시, 방역 더 어렵게 만들어"
전 전 본부장은 2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찰의 강제수사는 방역에 협조하던 신천지 교인들도 도망치게 할 것"이라며 "추 장관이 도움을 주진 못할 망정 코로나19 방역 현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전 본부장은 "현재 방역을 위해선 신천지 교인들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라며 "수사로 겁을 준다고 이들이 협조할 것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해 감염병 전파 등 돌출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추 장관의 강제수사 지시에 대해 "코로나19와 관련한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 수사에 착수하라는 뜻"이라며 "방역당국과 긴밀히 협조하라는 지시를 이미 내린바 있다"고 해명했다.
"수사론 바이러스 잡을 수 없어"
전 전 본부장은 박원순(64) 서울시장이 이만희(89) 신천지 총회장을 살인죄로 고발한 것에 대해서도 "상당한 정치적 제스처로 보인다. 수사론 바이러스를 잡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 전 본부장은 "이런 긴급 상황에선 방역이란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우선"이라며 "신천지 수사보다 마스크 매점매석 수사가 훨씬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1985년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뒤 특채로 보건복지부에 입부한 전 전 본부장은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당시 질본 감염병대응센터장을, 2011~2013년엔 제4대 질병관리본부장을 역임했다. 국내 대표적인 감염병 전문가로 불리는 전 전 본부장은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질본이 대비를 못하고 있다가 기습을 당했다"며 박근혜 정부의 미숙한 대처를 비판했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 인터뷰 일문일답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신천지 강제수사 지시를 어떻게 보나
-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시라 생각한다. 신천지 교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협조하던 교인들도 도망을 갈 것이다. 핍박을 받았다고 생각해 감염병 전파 등 돌발행동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방역 현장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더욱 현장을 어렵게 만드는 지시라 생각한다.
- 신천지에 대한 수사가 적절치 않다는 뜻인가
- 수사를 해야한다면 조금 기다려달라는 뜻이다. 지금 현장은 비유를 하자면 전염병이란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불길을 끄려고 방역 당국이 신천지 교인 등 감염자들을 파악하고 있다.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는 이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일 수도 있다.
- 마스크 매점매석 수사는 어떻게 보나
- 이 부분은 경찰과 검찰이 철저히 수사를 해야한다. 수사로 바이러스는 잡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장에 물량이 부족한 마스크와 관련해선 철저한 수사가 방역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신천지 관계자들을 살인죄로 고발했다
- 상당히 정치적인 제스처라 본다. 추 장관의 지시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한다. 생각해보자. 모두 신천지 교인인 31번 환자를 손가락질 한다. 하지만 이 환자가 보건당국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현장의 의사가 31번 환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고 설득하지 않았다면 코로나19는 훨씬 더 확산됐을 것이다. 현재로선 신천지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 수사를 하면 신천지가 더 협조하지 않을까
- 천만의 말씀이다. 이들에게 수사로 겁을 준다면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편견, 시선 등과 연관된 감염병 환자들은 압박하면 더 숨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는 일반 사건과 같이 경찰과 검찰이 뛰어다닌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철저히 방역당국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의심) 확진자들의 협조 없이는 추가 감염을 막을 수 없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