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은 옛일"…한국과 경제협력 갈망|호치민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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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베트남 호치민시(구사이공)는 6개의 근교지역을 갖고있는데 추 둑 지역은 그중 하나다.
시 중심부에서 동족으로 20여km 떨어진 이 추 둑 지역에는 1번 국도와 트란 롱 가를 연결해주는 3∼4km 길이의 포장도로가 하나 있다.
4차선 너비의 이 도로 옛 이름은「따이한로」다.
베트남 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이 건설한 도로인 것이다.
이 도로는 건설된 지 20년 정도가 지난 지금도 잰 곳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도로사정이 좋은 것으로 이름난 호치민시의 여느 도로 못지 않게 튼튼히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따이한로」는 한국·베트남간의 과거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한국군이 베트남 전에 참가한 외부세력중의 하나로 베트남인들과 총을 들고 싸웠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 도로 건설사업에서 보듯 한국이 베트남 구사이공 정권과 경제협력을 했던 사실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의 관리나 기업인들은 과거「한국의 베트남 전 참전」 에 대해서는『과거의 일』이라거나『주변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며 굳이 언급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한국을 그리워한다>
그보다는 양국간 경제관계를 중시해서『현재가 중요하다』『한국과의 경제협력을 희망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있다.
이러한 점은 호치민시에서 겪은 한 에피소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몇 달 전 호치민시 후에 가의 수출입공사(IMEXC)를 방문했을 때였다.
IMEXCO는 베트남 외국투자 법이 시행된 88년 이전까지 남부베트남 생산업체들의 수출입업무를 전담했던 무역전문회사다.
동행한 기업인 일행이 IMEXCO와 상담중이고 혼자 사무실을 막 나서고 있었다.
이때 칸(16)이라는 소년이 달려와『당신 한국사람?』이라고 물어 그렇다고 하자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 내밀었다.
테이프 곁에 쓰여있는 노래제목은『우리는 한국을 그리워한다』(We miss KOREA).
한국인인 것을 알아차린 것도 신기했지만 테이프의 노래제목에 더욱 호기심이 동해 노래를 들어보았는데 그 노래의 2절은 다음과 같다.『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생활을 이루기 위해 노래하는 나라, 이 복된 나라 한국에 별들도 반짝이고 있네, 아름다운 인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 용감하고 강한 사람들에게 영광이 있으리니, 미래는 이상향을 이루려는 이들에게 있을 것이다. 오! 우리는 한국을 그리워한다. 무한한 사랑으로 이 노래를 바친다. 그리고 당신들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기원한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조금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이 노래가 단순히 한국의 경제성장을 부러워한다거나 찬양하려는 의도에서
지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 노래가 지어진 배경설명에서도 알 수 있다.
베트남 국영수산물수출입공사(SEAPRODEX) 부사장이면서 시인이기도한 트루옹 탄하 씨가 지난해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기념으로 지은 시에서 비롯된 노래라는 것이다.
하 부사장은 이 시에 곡을 붙여 호치민시의 여가수 마이에게 주어 부르게 했다는 설명이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나오는 배경설명에는『앞으로 한·베트남간 경제협력의 진전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사랑하는 한국인 친구들에게 이 노래를 보낸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마이의 감미로운 노래가 끝날 매쯤이면 베트남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아리랑 곡조도 나온다.
이 노래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베트남기업인들이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얼마나 바라고있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IMEXCO의 티엔 부회장은 한국 기업인들과의 상담에서『한국 기업과의 협력은 수출입·투자 등의 분야에서 어떤 품목이건 가능하다. 특히 투자에 있어서 1백% 단독출자도 언제든지 환영한다. 베트남으로서는 수출가공분야의 합작투자에 가장 관심이 많다. 설비·자본·기술·마케팅 등에서의 도움도 필요하다』며 협력 희망분야를 열거하기도 했다.

<누구든지 방한 희망>
호치민시 경제관료들의 대한 접근자세도 매우 적극적이다.
IMEXCO방문직전 동코이 가에 있는 호치민시 상공회의소에서 딘 푸 딘 대외경제부처 차관(호치민시담당) 겸 호치민시 상의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딘 차관은『한국·베트남간 교류가 한동안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상호 정보전달 및 이해증진에 어려운 점이 많았었지만 앞으로 한·베트남간 경제협력에 장애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던 것이다.
또 딘 차관은『한국기업인·경제사절단 뿐 아니라 베트남과의 생산협력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방문을 언제나 희망한다.
한국과는 아직 입국비자에 관한 협정을 맺고 있진 않지만 사절단 방문 시 베트남 상공회의소를 통해 사업비자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양국 기업인의 상호방문에 빌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 또 한국기업들이 베트남에 지사 사무소를 열 경우 그에 대한 허가권은 바로 대외경제부처의 소관업무다.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한국참전군인, 즉「따이한」에 대해 갖고있던「반감」이 완전히 수그러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과거에 집착하기에는 현실경제가 너무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에 「과거는 덮어두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베트남을 방문한 한국인들이 한국군참전에 대한 베트남 사람들의 현재 감정을 물을 때 답변은 거의 비슷하게 나오게 마련인 것이다.
지난 1월 한국을 방문했던지 반 롱 섬유수출입공사(TEXTIMEX) 사장이 기자와 인터뷰 시 했던 말이 그 전형적인 대답이다.

<지사개설 최대 협조>
지 반 롱 사장은『나는 레 둑 토와 과거 혁명동지다(레 둑 토는 전 베트남총리로 지난 73년 파리평화협정을 체결, 미국 등 베트남 전에 참가했던 모든 외국군들을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철수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 공로 때문에 미국의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함께 그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었다. 따라서 당연히 한국군과 총을 들고 싸운 경험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한국이 베트남 전에 군대를 파견했던 것이 주변국가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갈 이해하고있다.
과거는 과거고 이제는 현재가 중요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마련되고 있는 마당에 과거가 문제될 이유는 더욱 없다』고 밝혔던 것이다.
이들 호치민시의 기업인·관료들 뿐 아니라 하노이의 정책결정권자들까지도 한 목소리로 대한 경제협력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시사적이다.
왜냐하면 베트남 개방·개혁의 속도를 놓고서 호치민과 하노이간에 이견을 보이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호치민시는 베트남 경제활동의 중심지로서 과거 자본주의적 기업경영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개방·개혁의 폭과 속도를 더욱 확대하지 않고서는 경제난국을 이룰 수 없다는 입장인◀반면 하노이로서는「사회주의적 공업화」라는 기본 틀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진한다는 방침인 것이다.

<점진적 개혁 추진>
따라서 대한 경제협력에 있어 호치민시와 하노이당국이 의견일치를 보이는 것은「한국이 적절한 협력파트넌 라는 점에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노이 대외경제부처의 트란후안 포이 외국경제관계국장도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포이 국장은『베트남은 외화부족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중이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외국자본, 둘째 진보된 기술수준, 셋째는 기업경영경험 등이 필요하다. 남한은 베트남의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남한은 베트남의 교역국가 중 일본·싱가포르·홍콩·호주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규모를 갖고있으며 최근의 큰 무역흑자를 기반으로 다른 나라들에 투자·수출증대를 강구하는 것으로 알고있다.
반면 베트남으로서는 자원이 풍부해 성장잠재력이 매우 높을 뿐 아니라 숙련노동자를 비롯해,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있다.
따라서 베트남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증진 및 교역확대·투자증진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한국과 베트남 양국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어 매우 적절한 협력상대라는 것이다.
또 포이 국장은『베트남에서는 대외경제부처가 중요한 조건들을 갖고있다』며『베트남에 대한 투자는 국유화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한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포이 국장은 한국기업인의 미국·베트남간 관계개선 전망에 대한 질문에 대해『그것은 프랑스·일본기업인들도 물어온다』며『그들은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태도변화에 매우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면서『미국은 과거 우리의 적이었지만 그것은 10년 이상 전의 일이다.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수차에 걸쳐 강력히 희망했었으며 지금도 미국이 좀더 실제적인 방법으로 정책변화를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글·사진 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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