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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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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기고 고성범 고대구로병원 뇌신경센터 교수

'멘델의 유전법칙'은 현대 유전학의 기초가 되는 가장 중요한 발견이다. 완두콩을 이용해 유전형과 표현형에 대한 개념과 우성 및 열성 유전의 근본을 제시했다. 실생활에서도 자녀 얼굴이나 행동을 보면서 유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특정 유전 형질을 가진 집안의 가계 구성원 전체 유전 형질을 조사해 가계도로 나타내고, 유전 형질이 어떻게 유전된 것인지 조사하는 것이 가계도 연구다. 사람의 유전 방식을 알아보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유전 질환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중에서도 유전에는 ‘증폭 예상 현상’이 있는데, 아버지보다 그 아들에서 더 먼저 유전병이 발생하고 더욱 심하게 증상이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삼염기 반복 질환이라는 매우 특이한 유전 질환이 있다. 헌팅턴병, 유전성 척수소뇌실조증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헌팅턴병은 뇌에 생기는 유전 질환이다. 춤을 추듯 몸의 움직임이 불규칙적으로 너무 많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헌팅턴 유전자는 4번 염색체에 있는데, CAG라는 세 개의 염기가 반복되는 특이한 구간이 있다. 이 부분이 40개를 넘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면 헌팅턴병이 발생한다. 일반인은 10~25개의 반복 서열을 갖는다. 반복 서열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증상이 심하고 일찍 발생한다.

이런 삼염기 반복 질환은 유전적으로 매우 특이한 성격이 있다. 그것은 남자 환자의 유전 질환을 자식이 물려받게 될 경우, 삼염기 반복 서열이 증폭·전달돼 그 증상의 발생이나 중증도가 훨씬 심해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을 경우에는 증폭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즉 아버지의 유전 질환을 자식이 훨씬 심한 질환으로 물려받는 것을 ‘증폭 예상 현상’이라고 한다. 때에 따라서는 증폭된 삼염기 서열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유전병이 발생하기도 한다. 증폭 예상 현상은 헌팅턴병 외에도 운동 신경의 손상이 진행되면서 근육이 마르고 힘이 없어지는 케네디병, 중심을 잡지 못해 보행 장애가 발생하는 척수소뇌위축증에서도 발생한다.

유전 질환의 경우 증상이 있는 환자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에 같은 증상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유전자 이상이 있어도 반드시 병으로 나타나지 않기도 하고, 열성 유전이어서 유전자 한 쌍을 구성하는 2개의 유전자 중 하나만 이상이 있는 가족들은 증상이 없는 경우도 있다.

간혹 집안에 유전 질환이 있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숨기기도 한다. 가족력이 유전 질환을 진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실마리가 되지만 때로는 다음 세대에 더 확연해 마치 가족력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가족력은 윗세대뿐 아니라 아래 세대도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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