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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창구' 지적에 없앤다던 국회 파견 판·검사...급 올리기 '꼼수'

중앙일보

입력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뉴스1]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뉴스1]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지난해 1월 구속기소 된 임종헌 법원행정처 전 차장의 공소장에는 국회에 파견된 판사들이 국회의원들의 재판 청탁을 받아, 실제 재판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 정황이 적나라하게 적시됐다.

대법원은 문제가 터진 직후 '로비창구'로 활용된 국회 파견 판사를 없애겠다고 했다. 검찰 역시 입법 과정에 영향을 미쳐온 관행을 끊기 위해 국회 파견 검사를 없애겠다고 했다. 1년여가 지나 사람들 머릿속에서 국회 파견 판·검사들의 문제가 희미해진 현재, 어떻게 됐을까.

부장급 전문위원 없앴지만, 자문관을 부장급으로 올려 

법원 정기 인사가 발표될 예정인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 정기 인사가 발표될 예정인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법조계와 국회에 따르면 '꼼수' 인사를 통해 국회 파견 판·검사 자리는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법원 출신 2명, 검찰 출신 2명이 각각 전문위원(2급)과 자문관(2~3급)으로 배치됐다.

국회 전문위원은 법사위에 올라오는 모든 법안을 검토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부장판사·부장검사급이 법원과 검찰에서 사직한 뒤 전문위원으로 근무하다가 임기가 끝나면 다시 법원과 검찰에 재임용되는 식으로 사실상 파견됐다. 자문관은 전문위원을 보좌하고 국회의 법률 자문 업무를 맡는다고 알려져 있으며, 보통 평판사와 평검사가 직을 유지한 채 파견된다.

여기서 '꼼수'는 법원과 검찰 모두 전문위원 자리는 없앴지만, 자문관 자리는 남겨둔 점이다. 이후 검찰과 법원은 연이어 자문관에 파견되는 급을 일반 판·검사에서 부장급으로 올렸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전문위원이나 자문관이나 명분은 법률 자문이지만, 사실상 구분 없이 모두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며 "법원과 검찰은 입법 로비 창구로, 국회의원들은 재판 청탁 창구로 활용하고있어 국회 파견 판·검사 자리는 모두 없애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서 무슨 일을 했길래…

임종헌 전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2016년 8월 노철래 당시 새누리당의원이 정치자금법위반죄로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자 임 전 차장이 국회 파견판사를 통해 법사위 의원이 제공한 형량비교문건을 전달받고 성남지원장에게 전달한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에 임 전 차장은 문건을 전달하는 이메일에서 선처를 부탁한다는 취지로 "부담을 드려 죄송하다"고 기재했다고 적시했다.

국회에서 법원개혁, 검찰개혁 논의가 뜨거워질 때면 국회 파견 판·검사들은 치열한 정보전을 벌이기도 한다. 국회 사법개혁 특위 위원들에게 법원과 검찰의 입장을 설명하고, 관련 정보를 발 빠르게 입수해 친정에 보고하기 위해 뛰어다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놓칠 수 없는 이유...승진으로 가는 지름길

법원과 검찰이 국회 파견직을 놓칠 수 없는 이유는 엘리트 판·검사들의 '승진코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법무부와 국회를 통해 국회 파견 판검사 명단을 확인해 파견 이후 인사를 살펴보니 상당수가 수도권의 요직으로 이동했다.

국회사무처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그래픽=신재민 기자

국회사무처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 그래픽=신재민 기자

2000년 이후 전문위원으로 파견된 부장검사 7명 중 지난해 복귀한 이문한 고양지청장을 제외한 5명이 검사장이나 차관급까지 승진했다. 남은 1명도 지청장,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합을 맞추다 최근 인사로 대전고검 검사장으로 내려간 강남일 검사장 역시 국회 파견 경력이 있다.

같은 기간 검사 자문관 10명 중 8명은 재경 지검에 있을 때 국회로 파견을 갔으며,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차관급)과 검사장 각각 1명, 부·차장급 5명을 배출했다.

2002년 이후 국회에 파견된 판사 15명 중에서는 현직 헌법재판관(이영진)과 한때 차기 대법관 1순위 자리였던 법원행정처 차장(김인겸)이 배출됐다. 정치권과의 네트워크가 중요한 청와대 법무비서관(이제호·강한승)도 둘이나 나왔다.

 국회 파견 판사(전문위원). 그래픽=신재민 기자

국회 파견 판사(전문위원). 그래픽=신재민 기자

국회 파견 자문관(평판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국회 파견 자문관(평판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법권유착의 또 다른 케이스"라며 "특히 사법부에 소속된 법관들의 경우 독립적으로 재판 업무에만 집중하는 게 맞고, 국회를 비롯한 외국 대사관 파견 등도 적절한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회의 소통을 위해서 1명씩은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다. 야당의 한 보좌관은 "법원과 검찰은 수사나 재판에 직접 연관된 곳이기 때문에 판결문, 공소장 등 직접 해당 재판부나 수사팀에 국회가 접촉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며 "자문관들이 메신저 역할을 해줘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광우·이수정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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