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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간 샅바싸움에... '동물 방역 컨트롤 타워' 1년 넘게 지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종 코로나감염증(코로나 19),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야생동물에서 유래한 질병의 국내 유입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전담할 국립 야생동물 질병관리원은 준공 1년이 넘도록 미가동 상태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와 직제, 인력 등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간 이견 해소가 안 된 탓이다. 현재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국립환경과학원의 경우 지난해 9월 ASF 발생 직후부터 인력 부족 문제가 제기됐지만, 아직 충원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5개월째 '직제 협의 중'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환경부에 따르면 야생동물질병관리원은 지난 2018년 10월 정부가 약 200억원의 국비를 들여 준공했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이후 야생동물 유래 질병의 관리가 필요하다는 요구에 따라 설립이 추진됐다. 야생동물 질병의 사전감시·확진·역학조사부터 과태료 부과, 살처분 명령 등 행정권 집행까지 담당하는 방역 전담 '컨트롤 타워'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지난해에는 41억원 규모의 실험·분석 장비까지 구축을 완료하고 직제 협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행정안전부가 직제와 인력 규모를 최종적으로 마무리 짓지 못하며 1년 넘게 개원이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ASF 국내 상륙으로 경기 북부와 강원도 사육 돼지가 전량 살처분됐지만 여전히 질병관리원 설립은 답보 상태다. 윤태근 환경부 생물자원보전기관건립TF 팀장은 “장비 구매와 더불어 필요한 인력 규모 등을 협의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지난해 9월 행안부에 공문을 보내 인력 규모 80여명에 1~2급 고위공무원단급 기관이 필요하다 제안했지만 행안부에서는 과장급 조직으로 답변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의학 전문 연구인력 등 채용도 아직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규직 7명 국립환경과학원, 인력 보강 '아직'

지난해 10월 16일 경기도 파주시 ASF 발생 양돈농가에서 살처분 매몰지가 비닐로 덮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16일 경기도 파주시 ASF 발생 양돈농가에서 살처분 매몰지가 비닐로 덮여 있다. [연합뉴스]

기존 전담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의 업무는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했다. ASF뿐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야생동물 유래 질병 연구를 담당하는 생물안전연구팀의 인력 규모는 총 15명. 그중 정규직은 7명, 계약직이 8명이다. 지난해 ASF가 국내 상륙으로 경기 북부·강원도 지방의 사육 돼지가 전량 살처분되는 등 피해를 봤지만, 이후에도 인력 충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원화 국립환경과학원 생물안전연구팀장은 “국내 박쥐가 보유한 코로나 바이러스 분석을 비롯해 AI, ASF까지 전담하고 있다”며 “특히 박쥐에서 유래한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2016년부터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ASF처럼 긴급한 상황이 지속하면 기타 질병에 대한 적극적 감시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변국에서 야생동물 관련 질병이 증가하는 추세에다 강도도 위협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국제협력 파트를 강화해 아직 들어오지 않은 질병에 대한 예방적 감시도 강화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질병관리원이 일찍 개원했다면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백신 개발 등 대응이 보다 신속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윤태근 팀장은 “당초 국립환경과학원에서는 박쥐에 대한 일회성 조사만 가능했지만, 인력보강이 되었다면 전국 단위의 상시적인 조사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생 멧돼지 ASF, 4개월 반만 217건  

정부가 질병관리원 설립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국내 야생멧돼지에서 확진된 ASF 건수는 총 217건(17일 기준)으로 늘었다. 지난해 10월 첫 야생멧돼지 ASF가 검출된 이후 4개월 반만이다. 지난 7일과 11일에는 ASF 남하 '최후 방어선'이라 불리는 광역 울타리 밖에서도 2건의 ASF 확진 폐사체가 나왔다. ASF의 유입경로를 비롯한 정확한 역학조사도 반년 가까이 난항을 겪고 있다.

야생멧돼지에서 ASF가 잡히지 않자, 지난해 사육돼지를 예방적 살처분한 농가들의 재입식(돼지를 다시 사육하는 것) 계획은 오리무중 상태다. 그러면서 농가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준길 ASF 희생농가총비상대책위원장은 “농가들이 전면적 재입식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며 “기준에 따라 단계별 재입식이 가능하지만, 정부가 어떤 기준도 제시하지 않아 농가들이 더욱 힘든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 13일 “ASF는 지금도 상황이 진행 중”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재입식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선을 그었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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