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범들 협상 타결 뒤 시간 끌어 선원들 출항 때까지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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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소말리아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된 원양어선 동원호 선원들이 무사히 풀려나기까지는 무려 117일이 필요했다. 피 말리는 협상이 그 시간을 메웠다. 동원호 선원 25명은 4월 4일 오후 3시40분쯤(한국시간) 소말리아 인근 공해상에서 참치잡이 조업 중 보트 2척에 나눠탄 채 총기를 난사하며 접근한 8명의 무장세력에게 납치됐다.

피랍 수일 후 납치세력이 '소말리아 머린'이라는 군벌 휘하 무장단체로 파악되면서 동원수산이 이들과 협상에 나섰다.

석방협상 타결을 즈음해 외신들은 '현지 군벌 압디 모하메드 아프웨이네 휘하의 민병대원들'이라고 납치세력의 실체를 전했다. 정부도 가능한 한 외교채널을 총동원, 소말리아 과도정부에 영향력 행사를 부탁했다. 그러나 협상은 쉽지 않았다. 정부는 5월 9일 납치 단체 내부의 이견 때문에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언론에 공개했다. 납치 세력 안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몸값을 받아내려는 소수의 '강경파'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그 시점부터 1개월 이상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납치범들은 당초 100만 달러를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석방이 늦어지자 책임 소재 공방도 벌어졌다. MBC 'PD수첩'은 25일 프리랜서 PD가 현지에 선원들의 생활 모습 등을 촬영한 화면을 방송하며, 정부가 협상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해적들을 상대로 직접 대면 협상에 나서는 정부는 없으며, 두바이는 송금상 편의를 위해 해적들이 요구한 협상장소"라고 해명했다.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동원수산과 정부는 협상의 고삐를 쥔 결과 29일 오후 극적으로 납치단체와 석방조건에 합의했다. 이어 동원호 선원들은 납치범들의 감시하에 '안전한 해역' 근처로 이동했으나 납치범들이 "날이 어두워졌다. 내일 아침에 보자"면서 다시 시간을 끌어 30일 오후 늦게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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