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생회의 사죄 조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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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사람 같지도 않은 이 녀석들 여긴 왜왔어. 고해성사하고 분향만 하면 다 되나. 우리 인종이를 살려내.』
17일 오후 서울 무악동 세란병원 영안실. 동양공전학생 고 설인종군 사진 앞에 엎드린 연대총학생회 간부 3명의 등위로 유족들의 분노가 쏟아져 내렸다.
동료학생 6명의 끔찍한 행동에 대해 대신 용서를 빌기 위해 찾아온 부회장 김도균군 등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함께 온 김찬국 부총장·김우식 학생처장도 위로의 말을 채 꺼내지 못했다.
『내일 연대를 찾아 갈거야. 도살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 한번 해 봐야겠어.』
설군의 아버지 설영휘씨(53)는 굳은 얼굴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맏형 우종씨(30)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인종이 시체를 한번 보세요. 학생들이 죽이려고 작정하고 때린 것이 틀림없어요. 빨갱이 짓 한 사람도 정식재판을 하고 벌을 주는데 아무 죄 없는 동생을 최고학부 지성인들이 그렇게 패 죽여요?』
이모부 이복균씨(60)는 고함을 질렀다.
『최고학부가 아니라 사람잡는 백정 양성소여.』
10여분간 묵묵히 듣고만 있던 김 부총장은 어머니 우영자씨(50)의 손을 꼭 잡으며『우리학생들이 백 번 잘못했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는 말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렸다. 한 동료 젊은이를 죽인「각목폭력」의 충격파가 사회를 뒤흔든 이날 연대교무위원 37명 일동과 총학생회는 각각 성명을 발표, 유가족에게 사죄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총학생회 성명은 이 사건이 몇몇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사회의 아픔이고 비극」이라고 규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울러 공정한 수사 촉구도 빼놓지 않았다.
3공·5공·6공의 공안정국이 학생들의 가슴에 심어놓은「프락치망령」. 죽은 설 군의 실체가 어떻게 밝혀지든 이미 이 사건의 범인은「불신」이란 이름의 피해의식으로 드러나고 있다.<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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