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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도 열기 ‘배드랜드’를 뽕짝 리듬 따라 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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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다코다, 끝도 없는 목초지대,그리고 동물이 살지 못하는 땅 배드 랜드'

사우스 다코다를 횡단하며 느낀 첫 생각이다. 오죽하면 이름이 '배드 랜드'일까. 석회석 지대라 비가 오면 물이 그대로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생명체가 살 수 없다는 곳이다.

사우스 다코다 수 펄스에서의 하룻밤은 너무 짧았다. 여정을 푼 베스트 웨스턴 체인 호텔은 단층에 좌우로 방들이 늘어서 있다. 얼마나 긴지 로비에 한 번 가려면 5분은 족히 걸린다. 방 안에서 창밖으로 문을 열면 바로 주차장이다. 미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고속도 주변의 싸구려 여관(인)보다는 시설이 좋다. 방은 왜 그리 넓은지...

6시30분에 집합해 조별로 간단히 브리핑을 하고 7시 출발이다. 지옥 같은 더위와 땡볕 때문에 아침에 서둘러야 한다.

뒷면에 밀워키-LA간 횡단 지도가 들어간 반팔 티셔츠 하나만 걸쳤다. 오늘은 멋지게 잘 생긴 '스트리트 글라이드'를 탄다. 어제 탄 해리티지 스프링거 대신에 남일 프라미스코리아 부회장의 바이크를 접수했다. 평소 타보고 싶던 덩치 큰 바이크다. 국내에선 경찰들이 타는 '울트라 클래식'이 인기인데 스트리트 글라이드는 울트라 하고 디자인이나 엔진 등 대부분이 비슷하다. 디테일에서 조금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오늘은 A조로 옮겨서 동행한다. 로드 마스터는 어제 소개한 미국인 론 가우드(47)씨다. 한국말을 구수하게 잘 한다. '여러분들 시다(바리) 잘 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어디서 배웠는지 시다'라는 한국화된 일본말도 쓴다.

화이팅을 외치고 시동을 걸었다. 이윽고 출발이다. 5분 정도 달리니 바로 고속도로다. 가우드씨는 잘 쏜다. 쉽게 말해 시속 140㎞를 툭 하면 넘긴다. (이거 현지 경찰한테는 영업비밀인데...)

대열을 잘 맞춰 타는 데는 모두 선수다. 할리데이비슨코리아 이계웅 사장과 그의 아들 파블로 주니어(본명은 이태흥군인데 그렇게 부른다)가 후미를 맡았다. 맨 뒤는 김선경 부장이 모는 짚 커맨더다. 이 차 문을 열면 고향의 냄새가 난다. 아무리 밀봉해도 고개를 드밀고 나오는 김치 냄새 말이다. 김부장은 입이 삐죽 나왔다. 바이크로 달리고 싶은데 커맨더 운전을 맡았으니 말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이런 노래 가사가 생각나는 사우스 다코다의 고속도로다. 나무라도 옆에 있으면 좋으련만... 유식한 팁 하나 소개한다. 다코다는 인디언말이다.'블랙 힐즈'라는 뜻이다. 워낙 넓은 목초지대에 툭 하면 불이 났다. 그래서 조그만 언덕들이 검게 보여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오전 공기는 너무 상쾌했다. 하지만 조금은 서늘한 기운도 느껴진다. 아무래도 고속으로 달리다 보니 바람때문인 듯 하다. 그것도 잠시다. 한 시간 반을 달려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나왔더니 불볕 더위가 시작이다. 일기 예보에는 화시 105도 정도다.섭씨로 40도가 넘는 기온이다. 썬글래스를 안가져온 게 큰 패착이다. 눈이 아프게 부시다.

11시를 넘기면서 아스팔트는 후끈 달아 오른다. 한 시간 정도 간 뒤 반드시 물을 먹어야 한다. 생수 500㎖ 한 병은 순식간에 마신다. 달리면서 나온 땀이 바람 때문에 쉽게 말라서 그렇지 상당한 땀을 흘린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소변보고 싶은 생각이 안들 정도일까.

끝없이 이어진 길을 8인의 사나이들이 쏜다. '쌩'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두둥두둥 엔진음이 메아리쳐 온다.

오늘 점심은 제대로 된 햄버거로 하기로 했다. 윤명수 회장께서 '중앙일보에 기사가 나왔다'며 한턱 사기로 했다. 고속도로 주변 레스토랑에 들러 10달러 햄버거로 해결했다. 패스트푸드 햄버거와는 질이 다르게 맛있다.

사우스 다코다 횡단 길이는 무려 600㎞다.한 국(남한)보다 더 긴 셈이다. 오늘 주행거리는 무려 680㎞ 정도다. 모든 일정 중에 두 번째로 거리가 긴 날이다. 땅은 남한만 한데 인구는 겨우 60만이란다. 얼마나 척박한 땅인지 알 수 있다.

점심 이후 어김없이 졸음이 몰려든다. 이 때는 껌이 최고다. 참 더 좋은 게 있다. 나현주 회원이 사온 이른바 고속도로 봉고차 뽕짝CD다. 기자도 잘 모르는 옛날 뽕짝이 무려 20여곡 들어있다. 스트리트 글라이드에는 CD플레이어가 달려 있다. 광활한 목초 지대에 지나가는 차도 없는 고속도로. 뽕짝 볼륨을 최고로 키웠다. 한국에선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선 전혀 남에게 폐가 안된다.

쿵짝 쿵짝... 미국 땅에 웬 뽕짝. 암튼 잠 깨는 데는 최고다. 뽕짝도 한 시간 넘게 들으니 지겹다. 이번엔 할리 베스트 음반이다. 이 CD의 압권은 딥 퍼플의 '하이웨이 스타'다. 이 노래를 아시는 분은 금방 '아 잠깨기 좋겠다'라고 생각이 드실 게다.

이래 저래 달리고 또 달렸다. 오후 5시쯤인가. 목적지까지 100㎞ 밖에 남지 않았다. 갑자기 선선한 바람이 느껴진다. 우측을 보니 마른 하늘에 웬 번개... 서 너개가 내리치더니 우리가 진행하는 방향 하늘 색깔도 심상치 않다. 짙푸르게 변하면서 빗방울 한 두 방울이 느껴진다. 문제는 바람이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바이크가 흔들릴 정도의 돌풍이 불어온다. 번개는 자꾸 번쩍 번쩍 한다. 그 순간 우박과 왕방울만한 비가 몰아친다. 바람은 토네이도를 연상시킨다. 속도를 줄이고 할리 딜러샵 간판이 보여 일단 고속도로를 나왔다. 앗 바이크가 뒤뚱거린다. 돌풍 또 돌풍이다. 우리보다 후미에 있던 B조 김경희 회원의 바이크에 달린 카울(앞쪽 바람막이)이 바람에 날라갔다. 바이크 2대가 바람에 넘어졌다. 지나가는 차들이 휘청거리고 고속도로 갓길로 대피한다. 사막의 날벼락 같은 기후다. 흠뻑 비에 젖어 겨우 딜러샵으로 피신했다. '이런 게 토네이도'냐 라고 물었더니 '토네이도라면 바이크도 사람도 같이 날라갔을 것'이라며 '썬더 스톰'이라고 말해준다. 아찔한 20여분이었다. 만약 고속도로에서 대피하지 못했다면 비를 맞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바이크가 넘어지면 지나가는 대형 트럭 밑에 들어간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큰 부상 없이 피신했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언제 그랬 냐는 듯이 강풍과 거센 비가 멈췄다. 저녁 7시다. 한 시간 남은 거리를 누엿누엿 지는 해를 벗삼아 또 달린다. 귓전을 때리는 거센 바람소리는 이제 다정한 친구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내일은 또 어떤 역경이 찾아올까. 피곤속에 새벽 두시가 넘어 침대에 누워 한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생각해본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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