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울산 선거 개입 의혹, 이제 청와대가 직접 설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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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울산 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 내용이 공개되면서 청와대가 2018년 6월 울산시장 선거에서 송철호(현 시장) 민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와 수사에 개입한 정황이 구체화되고 있다. 송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다. 공소장에 따르면 청와대 민정·정무수석실 등 비서실 직제 조직 7곳이 송 시장 당선을 위해 동원됐다. 또 2017년 9월에는 송 시장이 황운하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을 만나 ‘김기현 관련 수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해 달라’는 취지로 대화하며 수사를 청탁했다. 이 외에도 한병도 전 정무수석이 송 시장 경쟁자에게 다른 자리를 권유하는 등 청와대 차원에서 송 시장을 밀었다고 의심할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공소장대로라면 심각한 법치주의 훼손이다.

공소장 공개로 개입 정황 구체화돼 #국민적 의혹에 침묵, 민주정부 아냐

검찰은 특히 공소장 첫머리에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고 썼다. 검찰이 직접 대통령까지 언급한 것은 그만큼 사안이 엄중하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개입에 대해 알았거나 관여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사실 여부에 따라 심각한 정치적·사회적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당장 야당에서 특검과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작 아무런 말이 없는 곳이 청와대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5일 공소장 내용의 일부가 언론에 보도되자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그 후 공소장 내용 전체가 공개된 후에도 청와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는 발언 등으로 선거 중립 의무를 위반했고, 이로 인해 탄핵 소추를 당했다. 선거 중립 의무 위반에 비하면 불법 선거 개입 역시 결코 경미하지 않은 사안이다. 그런 만큼 국민적 의혹이 짙은 이번 사건에 대해 청와대의 공식 설명이나 해명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 비춰 봐도 ‘수사 중인 사안’으로 선만 그을 일이 아니다. 침묵으로만 일관하면 앞으로도 문재인 정부가 민주적인 정부라 할 수 있겠는가. 공소장에 따르면 경찰의 21차례 청와대 보고 중 여섯 차례는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국정기획상황실로 보고됐다고 한다.

당초 공소장 비공개 방침을 정해 논란을 증폭시킨 추미애 법무장관은 과연 장관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오죽하면 친여권 성향의 정의당이나 참여연대는 물론 여권 내에서도 “실익도, 명분도 없는 결론을 내렸다. 사고를 친 것”이란 비판이 나오겠나. 대규모 인사를 통한 사실상의 검찰 수사 방해, 기소 대상 축소 지시에 이어 공소장 공개 거부까지 추 장관의 비이성적 행태는 정권 도덕성의 바닥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