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유승민의 결단과 합당 제안, 보수의 환골탈태 계기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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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보수통합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통합의 한 축인 유승민(새로운보수당) 의원이 자유한국당의 합당 제안을 전격 수용, 이르면 다음 주 통합신당의 윤곽이 가시화할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권의 독주를 막기 위한 통합 요구가 분출하고 있는 터여서 이번 합당 결정의 의미는 작지 않다 하겠다. 특히 유 의원은 공천권·지분 등을 요구하지 않겠다며, 백의종군의 의지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보수 진영에선 보기 힘들었던 양보와 희생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러나 양당이 무조건 합친다고 해서 보수 정당에 등 돌린 민심과 국민 지지가 되돌아오는 건 아니다. 대안 정당으로서의 능력과 확고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물리적 통합은 총선을 겨냥한 이벤트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수는 뿌리부터 재건돼야 한다. 한국 보수 정치가 가야 할 길은 개혁보수”라고 한 유 의원의 진단은 적절하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과 같은 문 정부의 폭주가 이어진 데는 보수 야당의 무능에 원인이 있었다. 내정·외교의 전방위적 위기, 난무하는 포퓰리즘,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과 조국 사태 등 정권 실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리 의혹이 연달아 터져나왔지만 보수 야당은 이를 저지하지도, 그렇다고 분명한 대안을 내놓지도 못하며 우왕좌왕해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분당 사태, 지방선거 참패를 겪고도 대오각성은커녕 친박·비박으로 갈려 서로 삿대질하며 분열했다. 그러니 대통령과 집권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데도 민심을 끌어안지 못한 채 “문 대통령이 야당 복 하나는 타고났다”는 조롱을 받는 지경이 된 것 아니겠는가.

보수 혁신이 성공하려면 ‘보수=기득권 지키기’라는 이미지를 깨는 인식의 대전환이 우선돼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없는 ‘닥치고 성장’ 식의 경제 공약이나 무조건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식의 주장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과감한 혁신 공천과 내부 인사들부터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기희생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안목과 혜안, 그리고 이를 실천할 능력을 갖춘 인사들을 발탁해 전면에 내세우는 게 급선무다. 이번 통합이 뼈를 깎는 보수 정치의 환골탈태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