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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율 인상의‘역습’… 법인세수 6년 만에 감소 확실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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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법인세수가 전년 대비 줄어들 게 확실시된다. 법인세가 직전 해보다 덜 걷히는 건 2014년 이후 처음이다. 경기 부진 여파로 지난해 기업의 이익이 확 줄어서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올렸지만 세수와 직결되는 기업의 영업 이익이 떨어지다 보니 세율 인상의 약발이 듣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경기가 어려울 때 기업의 세금 부담을 늘린 게 세수 감소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해 법인세수가 6년 만에 줄어들 전망이다.[중앙포토]

올해 법인세수가 6년 만에 줄어들 전망이다.[중앙포토]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의 법인세수 예상치는 64조4000억원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64조3000억원이 걷힐 거로 내다봤다. 어느 경우든 지난해 법인세수에 못 미친다.

지난해 법인세수는 72조2000억원이다. 지난해 정부의 법인세수 예산(79조3000억원)에는 못 미치지만 2018년(70조9000억원)보다는 많이 걷혔다. 연간 법인세수는 2013, 2014년에 2년 연속 줄었다가 2015년에 증가세로 돌아선 뒤 지난해까지 늘었다. 2018년과 지난해에는 70조원이 넘게 걷혔는데, 올해 다시 60조원대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크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지난해 상당수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반토막나며 올해 법인세수의 대폭 축소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재벌닷컴이 매출액 10원 이상 비금융 상장사 13개의 지난해 1~3분기 영업실적을 집계한 결과 이 기간 13개 회사의 영업이익은 모두 33조2000억원이다. 1년 전 같은 기간(75조8000억원) 동안 56% 급감했다.

연도별 법인세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연도별 법인세수. 그래픽=신재민 기자

기업이 다음 해에 낼 법인세를 미리 정산하는 중간예납 실적을 봐도 법인 세수 감소세는 뚜렷하다. 각 회사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해 1~3분기 연결 기준 법인세 비용은 6조2012억원으로 1년 전(13조6694억원)보다 54.6% 줄었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1~3분기 법인세 비용은 5412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4조4785억원)보다 87.9% 급감했다. 법인세 비용을 보면 중간예납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법인세는 전체 세수의 20% 이상을 책임진다. 지난해 1~11월 기준으로 주요 세목(稅目) 중 전년 대비 늘어난 건 법인세뿐이다. 이런 법인세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큰 탓에 정부는 올해 전체 세금이 지난해보다 덜 걷힐 거로 내다봤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세수 예상은 292조원으로 지난해(293조5000억원)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지난해 법인세 수입 감소 영향을 상당 부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세수를 정부 예상치보다 적은 288조8000억원으로 예상했다.

정부가 2018년부터 법인세 최고세율을 22%에서 25%(지방세 포함하면 24.2%에서 27.5%)로 올린 게 역효과를 불러오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한국과 달리 주요국은 투자 유치와 경기 부양을 위해 법인세율을 낮추는 추세다. 미국은 지난해 2018년부터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내렸다. 성장 속도가 떨어진 데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까지 겹친 중국은 올해 법인세율을 기존 25%에서 2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세율을 올렸을 때 세수가 늘어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기업의 국내 투자가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주요국이 감세 경쟁을 펼치는데 한국은 거꾸로 가면서 기업의 국내 투자 위축과 해외로의 이탈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법인세율 인상은 단기적으로는 세수를 늘리지만, 장기적으로는 세원을 줄여 세수를 줄이는 작용을 한다”며 “올해부터 이런 역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조업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 여파 등으로 국내 세수 여건은 더욱 어려워졌다”며 “법인세율 인하를 포함한 특단의 투자 활성화 방안 마련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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