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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신속투입' 군용기 왜 우한 안 갔을까···독일은 반대한 中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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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온상인 중국 우한(武漢)에서 엑소더스가 펼쳐지고 있다. 우한을 탈출하려는 외국인과 또 그들을 실으러 온 외국 국적 민항 전세기로 우한 톈허(天河) 공항이 북적이고 있다. 한국도 지난달 31일과 지난 1일 두 차례 전세기를 띄워 각각 368명과 333명 등 모두 701명의 교민ㆍ유학생을 국내로 데리고 왔다.

우한 ‘엑소더스’ 군용기 투입 안해
민간 전세기 준비하느라 지체됐나
재외국민 구조 등 역할 확대 추세
장거리 작전 능력은 여전히 부족해

2014년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남수단에서 유럽의 공군 수송기가 공중에서 폭탄 대신 긴급 구호품을 떨어뜨리고 있다. [유튜브 EU Civil Protection & Humanitarian Aid 계정 캡처]

2014년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 남수단에서 유럽의 공군 수송기가 공중에서 폭탄 대신 긴급 구호품을 떨어뜨리고 있다. [유튜브 EU Civil Protection & Humanitarian Aid 계정 캡처]

그런데 일각에선 전세기보다는 군용기를 활용하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공중급유기인 KC-330 시그너스를 우한에 보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유럽의 에어버스가 민간 여객기인 A330을 공중급유기로 개조한 KC-330은 공중에서 작전 중인 전투기에 급유하는 임무 이외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고 해서 다목적 공중급유기(MRTT)라고 불린다.

공중급유기로 유사시 재외국민 구조할 수 있다던 공군

KC-330은 승객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그대로 있다. 또 연료 탑재 공간과 별도로 화물 탑재 공간이 있다. 공군은 지난해 1월 30일 KC-330 전력화 행사를 진행하면서 “(KC-330은) 300여명의 인원과 47t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며 “국제 평화유지 활동과 해외재난 지원, 재외국민 구조 활동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군은 KC-330 도입을 추진할 때 유사시 재외국민 구조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KC-330 공중급유기가 비행하고 있다. 꽁무니에 나온 막대 모양의 물체는 비행 중인 항공기에 연료를 보급하는 공중급유봉이다. [사진 공군]

KC-330 공중급유기가 비행하고 있다. 꽁무니에 나온 막대 모양의 물체는 비행 중인 항공기에 연료를 보급하는 공중급유봉이다. [사진 공군]

재외국민 구조에 공군 군용기가 출동한 사례가 있다. 2018년 10월 태풍 위투가 사이판을 휩쓸고 지나간 뒤 공군 C-130 허큘리스 수송기가 같은 달 27~29일 사이판과 괌을 10차례 오가며 국민 799명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싣고 왔다. 당시 군용기를 보낸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공군 측은 “우한에 군용기를 보내는 방안은 아예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며 “2018년 사이판 공항의 경우 시설물과 항행 안전시설이 부서지고 활주로 상태도 매우 나빠 야전 비행장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는 공군 수송기를 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은 “이번에 KC-330을 동원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민항기는 전세 계약을 맺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군용기는 신속히 투입하고 퇴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철 전 차장은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처음부터 군용기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중국이 우한 주민의 심리적 동요를 막기 위해 해외 전세기를 승인하는 데 일부러 뜸을 들였다”며 “외국 군용기의 중국 영공 진입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터키, 이탈리아는 중국 우한에 군용기를 보내

하지만 독일은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기인 A310 MRTT에 자국민 110명을 태운 뒤 지난 1일 본토로 이송했다. 독일은 당초 지난달 29일 A310을 투입하려 했으나 중국이 반대했다. 독일이 중국을 끈질기게 설득한 것이다. 터키도 같은 날인 지난 1일 공군 장거리 수송기인 A440에 터키 국적 32명과 아제르바이잔ㆍ알바니아ㆍ조지아 국적 10명을 긴급 후송했다. 자국민 수송을 위해 우한에 보낸 이탈리아 공군의 공중급유기인 KC-767이 지난 3일 귀국했다.

지난 3일 이탈리아 공군 공중급유기인 KC-767가 이탈리아의 마리오 데 버나르디 군 공항에 착륙한 뒤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이 승객들은 중국 우한의 이탈리아 국민이었다. [사진 이탈리아 국방부]

지난 3일 이탈리아 공군 공중급유기인 KC-767가 이탈리아의 마리오 데 버나르디 군 공항에 착륙한 뒤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이 승객들은 중국 우한의 이탈리아 국민이었다. [사진 이탈리아 국방부]

우승엽 도시재난연구소 소장은 “군항기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민항기와 군용기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중국에 머무는 자국민에게 철수하라고 권고했다. 각각 5만명으로 예상하는 이 대규모 인원을 민항기에 다 태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군용기까지 총동원해야 할 상황이다.

한편, 외교부는 우한에서 특별 전세기를 타고 온 사람에게 “이달 28일까지 항공료를 납부하라”는 공지를 보냈다. 항공료는 각각 성인 30만원, 2~11세 22만 5000원, 2세 미만 5만원이다. 반면 지난 2018년 10월 공군 C-130 수송기를 이용한 사람은 이 같은 공지를 받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임무에 사람을 살리는 임무 맡은 군 

군이 전쟁만 벌이는 시대는 지나갔다. 군의 임무가 단지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만은 아니다. 사람을 돕는 일도 군의 주요 임무 중 하나다. 특히 최근 들어선 이같은 군의 임무가 더 필요해진 상황이다. 이런 작전을 전쟁 이외의 군사활동(MOOTW)이라고 부른다. MOOTW는 1990년대 미군에서 처음 나왔다. 영국군은 이를 평화지원 작전(PSO)이라고 부른다. MOOTW엔 인도적 지원, 재난 구조, 수색구조, 군비 통제, 평화유지 등이 들어간다. 대테러 작전도 MOOTW의 영역이다. 평시 일어나는 테러를 진압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전면전을 벌일 수는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25일 대지진이 일어나 피해를 입은 네팔에서 미군이 긴급 구호를 위한 '사하요기 하트' 작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해병대원이 네팔군과 함께 헬기에서 내린 구호물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 미 국방부]

2015년 4월 25일 대지진이 일어나 피해를 입은 네팔에서 미군이 긴급 구호를 위한 '사하요기 하트' 작전을 펼치고 있다. 미국 해병대원이 네팔군과 함께 헬기에서 내린 구호물자를 옮기고 있다. [사진 미 국방부]

최근 전 세계의 군 당국은 MOOTW 능력을 키우고 있다. 이표규 단국대 해병대군사학과 교수는 “냉전 종식과 세계화로 국제 환경이 바뀌면서 비군사적 위협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군은 비군사적 위협을 MOOTW로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군사적 위협은 대량살상무기 확산, 테러리즘, 불법마약 거래, 해양 범죄, 인터넷 범죄, 불법 이민, 환경오염, 전염병, 재해재난 등이다.

적극적인 미국, 미국을 따라가는 중국, 갈 길이 먼 한국 

MOOTW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MOOTW를 가장 먼저 생각해낸 미국은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테러리스트를 찾아 격멸하는 것보다 테러를 적극적으로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군이 할 수 있는 테러 예방은 결국 MOOTW로 적극 개입하는 방법 밖에 없다.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근해에서 작전 중인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 갑판에서 수병들이 화생방호복을 입고 제독 물질로 청소하고 있다. [사진 미 해군][사진 미 해군]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근해에서 작전 중인 미국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 갑판에서 수병들이 화생방호복을 입고 제독 물질로 청소하고 있다. [사진 미 해군][사진 미 해군]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 대지진 때 주일미군을 중심으로 한 미군이 벌인 도모다치(일본어로 '친구'를 의미) 작전은 MOOTW의 대표적 사례다. 미군은 재해 지역에 식량과 식수 등 긴급 구호품을 보내고, 인명을 구조하거나, 피해 복구를 도왔다.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나자마자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CVN 76)이 사고 지역으로 항해했다. 로널드 레이건함은 전투기 대신 각종 헬기와 수송기를 잔뜩 실으며 구호 작전의 사령탑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당시 일부 승조원은 방사능에 피폭됐고, 2016년까지도 로널드 레이건함을 비롯한 16척의 미 해군 함정이 방사능으로 일부 오염된 상태였다.

병원선은 미국의 MOOTW를 상징하는 전력이다. 화물선이나 여객선을 개조해 만든 병원선은 말 그대로 바다에 떠다니는 종합병원이다. 미 해군은 머시함(T-AH 19)과 콤포트함(T-AH 20) 등 2척의 병원선을 보유하고 있다. 머시함과 콤포트함은 7만t급에 병상은 1000개, 수술실은 12개를 갖췄다. 7만t이면 프랑스(3만7000t)나 중국(6만5000t)의 항공모함보다 더 큰 규모다. 걸프전 등 미군이 참가한 전쟁은 물론 해외에 일어난 재해ㆍ재난 현장에서도 미군 병원선을 볼 수 있다. 평상시엔 미국의 동맹국과 우호국을 돌아다니며 의료지원 활동을 펴고 있다. 미 해군은 예산 문제 때문에 병원선 1척을 없애려다, 미 의회의 반대로 그만뒀다.

2018년 미국 해군의 병원선인 머시함(T-AH 19)이 모항인 샌디에고를 떠나고 있다. [사진 미 국방부]

2018년 미국 해군의 병원선인 머시함(T-AH 19)이 모항인 샌디에고를 떠나고 있다. [사진 미 국방부]

패권 국가로 크려고 하는 중국도 MOOTW에 열심이다. 중국은 2015년 중국 인민해방군 8000명을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을 위한 상설 예비 병력으로 확보해놓겠다고 밝혔다. 또 미국을 따라 병원선을 전 세계로 보내 의료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다이산(岱山)함은 평시 허핑방저우(和平方舟)로 불린다. 영어론 피스 아크(Peace Arkㆍ평화의 방주)다. 이 배는 2018~2019년 205일 동안 태평양과 남아메리카를 항해하며 288건의 수술을 진행하고 수만 건의 의료검진을 했다고 중국이 자랑했다. 중국은 지난해 9월 병원선 1척을 더 진수했다.

MOOTW는 여러 나라가 국제적 협력을 통해 하기도 한다. 소말리아 아덴만에서의 해적 퇴치 활동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와 비나토 국가 해군들의 연합체인 제151연합임무대(CTF-151)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 해군도 2009년 3월부터 청해부대를 보내 CTF-151에 참여하고 있다.

청해부대 소속 구축함에서 해적을 퇴치하기 위해 해상작전 헬기인 링스와 고속단정이 출동하고 있다. 청해부대는 다국적 해적 퇴치를 위해 만들어진 다국적 제151연합임무대와 협조하고 있다. [사진 해군]

청해부대 소속 구축함에서 해적을 퇴치하기 위해 해상작전 헬기인 링스와 고속단정이 출동하고 있다. 청해부대는 다국적 해적 퇴치를 위해 만들어진 다국적 제151연합임무대와 협조하고 있다. [사진 해군]

청해부대 이외 한국도 MOOTW에 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국방백서 2018』에서 국방부는 “테러, 재해ㆍ재난 등 점증하는 비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능력과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의무수송헬기와 대형수송선(마라도함) 사업을 진행했다고 적었다. 대형수송기 도입도 검토하고 있다. 2018년 11월 진수한 해군의 훈련함인 한산도함(ATH-81)은 수술실 3곳과 진료실, 병실이 들어 있어 해난사고 의무지원, 구호활동 지원 등 다양한 임무에 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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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한국군은 아직 해외 장거리 지원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며 “MOOTW를 통해 국민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 기여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정부 관련 부처와 예산 부처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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