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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밀담

코로나 대피 우리 국민 철수…중국엔 민항기, 일본엔 군용기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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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철재 기자 중앙일보 국방선임기자 겸 군사안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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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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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8일 일본에 ‘공군3호기’인 VCN-235를 보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일본 요코하마(橫浜)항에 발이 묶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한국 국적자를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서다. 공군3호기는 공군의 수송기인 CN-235를 주요 요인(VIP)이 앉을 수 있도록 고친 기체다. ‘정부 수송기’라고도 불리지만, 엄연히 공군 소속의 군용기다.

시급했던 중국 우한 교민 후송 #유럽은 중국 설득해 군용기 투입 #군 수송기는 언제라도 출격 가능 #국민 보호 눈치를 봐선 안 돼

지난 2018년 10월에도 공군의 C-130 허큘리스 수송기가 태풍 이투의 피해를 본 사이판과 괌에서 국민 799명을 안전하게 한국으로 싣고 온 적이 있다. 당시 군용기를 보낸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그러자 일각에선 ‘일본은 맞고 중국은 틀리다’고 수군거린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의 온상처럼 돼 버린 중국 우한(武漢)에 민간 전세기를 3차례 보내 교민을 수송했다. 당시 정부는 군용기 투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랬던 정부가 일본에 대해선 군용기를 서슴지 않고 띄웠다.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개선을 원하는 한·중 관계와 양국이 서로 서먹해진 한·일 관계와 각각 맞아 떨어지기 때문인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를 빗댄 말이 나오고 있다.

18일 오후 일본 도쿄도 소재 하네다 공항에 한국 정부 전용기(VCN-235)가 도착해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요코하마 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격리된 국민을 전용기로 이송할 계획이다. 전용기는 19일 오전 한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일본 도쿄도 소재 하네다 공항에 한국 정부 전용기(VCN-235)가 도착해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요코하마 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격리된 국민을 전용기로 이송할 계획이다. 전용기는 19일 오전 한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 우리 국민이 적고 전세기를 빌리는 게 비싸기 때문에 군용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크루즈선에 탄 한국인은 승객 9명, 승무원 5명 등 모두 14명이다. 이 가운데 6명과 일본인 배우자 1명 등 7명이 귀국한다. 이들 7명을 위해 전세기를 빌리는 게 경제적이진 않을 것이다. 군 관계자는 “미국도 전세기를 보냈다”며 “중국은 외국 군항기의 자국 영공 진입을 꺼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절반만 맞았다. 미국의 경우 대형 항공사가 아니라 미국 정부와 특별 계약을 맺은 칼리타 에어·내셔널 에어의 전세기가 중국에 갔다. 이들 회사의 주요 고객은 미군이며, 미군의 인원과 장비를 전 세계로 실어 나른다.

독일·이탈리아·터키는 우한에 군용기를 파견했다. 이들 국가의 국적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알리탈리아·터키항공은 모두 우한 노선을 운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독일은 당초 지난달 29일 수송기로 자국민을 이송하려 했으나, 중국이 반대했다. 그러자 독일은 외교 라인을 총동원해 중국을 설득한 뒤 지난 1일에서야 다목적 공중급유기인 A310 MRTT에 자국민 110명을 태워 귀국했다.

이탈리아 공군의 공중급유기인 KC-767는 지난 3일 이탈리아 국민을 본국으로 후송했다. 특히 이탈리아의 KC-767은 외부로의 확산과 전염을 막는 생물학적 봉쇄(Biocontainment) 장비를 갖췄다. 신종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으로부터의 후송 작전을 미리 대비한 것이다.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AP=연합뉴스]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AP=연합뉴스]

한국 군용기도 중국을 오간 경력이 있다. 2008년 5월 쓰촨(四川)성 대지진 때 공군 수송기인 C-130 허큘리스 3대가 구호물자 싣고 청두(成都)로 날아갔다.

더군다나 한국은 유럽 국가들 못잖은 수단을 갖고 있다. 공군이 4대를 보유하고 있는 KC-330 시그너스 다목적 공중급유기 얘기다. 이 공중급유기는 300명이 넘는 인원과 47t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KC-330은 원래 민간 여객기인 A330을 개조했기 때문에 내부에 여객기의 승객 좌석이 그대로 있다. 국방부와 공군은 KC-330을 들여오면서 “국제 평화유지 활동과 해외재난 지원, 재외 국민 구조 활동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KC-330을 놀리면서 당시 강조했던 내용이 무색해졌다.

“정부가 중국을 의식해 처음부터 군용기를 고려하지 않았다”(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반드시 군용기가 출동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여건에 따라선 민간 전세기가 더 나을 수 있다. 문제는 정부에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처럼 아예 처음부터 중국에 군용기를 투입하는 방안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다고 보기 힘들다.

민간 전세기는 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반면 군용기는 바로 임무를 맡을 수 있고, 군에는 신종 코로나와 같은 특수 상황에 대처하는 훈련을 받은 병력이 있다. 상대국으로부터 영공 진입 허가를 받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외교적으로 푸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3대의 전세기를 제공한 대한항공은 적잖은 손해를 봤다. 땅콩 항공·갑질 논란·경영권 다툼 때문에 나빠진 회사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되돌리려고 대한항공은 수지타산 계산을 접었다. 다만 위험을 무릅쓰겠다는 승무원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재외국민의 안전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언제까지 국가가 민간 기업의 희생에 기대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 경제 10위권 진입을 눈에 앞둔 국가의 품격에 걸맞지 않다. 해외에서 곤경에 처한 국민이 ‘대한민국’ 글자와 태극기가 새겨진 군용기가 자신을 태우러 온 걸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최소 자신이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걸 느낄 것이다.

이철재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