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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꿈만 꾼 국방부···'한국형 아이언맨'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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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난 소년은 아빠를 찾기 위해 외계 행성을 돌아다닌다. 때로는 로봇을 타고 외계 군단과 싸운다. 1989년 등장해 많은 어린이가 우주의 꿈을 꾸게 한 TV 만화영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의 주요 내용이다.

[이철재의 밀담] #'미래 병사' 향한 '장미빛' 꿈 #현실은 더딘 속도, 사업 실패 #환상 접고 과감한 결단 필요

1989년에 전파를 탄 TV 만화영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에서 주인공 아이캔이 로봇 '코보트'를 타고 비행하는 장면. [유튜브 캡처]

1989년에 전파를 탄 TV 만화영화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에서 주인공 아이캔이 로봇 '코보트'를 타고 비행하는 장면. [유튜브 캡처]

당시만 하더라도 다들 2020년엔 만화영화처럼 우주여행이 어렵지 않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2020년 현실에선 우주여행은 가능한 일이지만, 쉽지는 않다. 무기도 마찬가지다.

한국형 아이언맨 개념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형 아이언맨 개념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통합 헬멧과 입는 컴퓨터, 첨단 위장복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차기 복합형 소총이 나오기는커녕 그냥 복합형 소총에서부터 멈췄다. 12년 전 그려낸 2020년 모습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졌다.

2008년 국방부가 공개한 ‘미리 본 2020년 한국군 모습’ 얘기다. 그래픽 속 2020년 한국군은 방탄 기능을 갖춘 첨단 전투복을 입는다. 이 전투복은 화생방 공격에서 병사를 지키며, 카멜레온처럼 자동으로 위장한다. '미래 병사’가 갖고 다니는 소총은 미니 미사일까지 쏠 수 있다. 입는 컴퓨터도 달려 통합 헬멧엔 가상현실 화면이 펼쳐진다. 거의 아이언맨이나 로보캅 수준이다

국방부는 그해 2월 “한국형 방탄 헬멧과 전투복을 3단계 기간으로 나눠 성능을 개량해 2020년께 최첨단 제품을 장병 개인에게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게임 '헤일로(Halo)'의 마스터 치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이와 비슷한 개념의 미래 병사 장비를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헤일로(Halo)'의 마스터 치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이와 비슷한 개념의 미래 병사 장비를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사진 마이크로소프트]

이 그래픽을 만든 곳은 국방과학연구소(ADD)다. 원본은 2001년 작품이었다. 당시 한국과학기술원 가상현실연구센터가 연 ‘군을 위한 입는 컴퓨터’ 세미나에서 공개한 미래 디지털 전장 환경에서 한국군 병사의 모습이었다. ADD는 2000년 연구팀을 만든 뒤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은….

그러나 그래픽이 목표로 제시했던 2020년 현재 미래 병사는 현실에서 전혀 볼 수 없다. 통합 헬멧과 첨단 전투복이 꿈꿨던 기술 중 상당수가 개발은 됐지만, 이 기술들을 엮어 실제 통합 헬멧과 첨단 전투복으로 나오진 못했다. 입는 컴퓨터 역시 그랬다.

2018년 10월 15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방위사업청,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K11복합 소총의 사통장치 균열 등 결함을 지적했다. 보좌관이 K11 복합 소총을 들어보이고 있다. 결국 K11 사업은 지난해 중단됐다. 변선구 기자

2018년 10월 15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방위사업청,국방과학연구소, 국방기술품질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K11복합 소총의 사통장치 균열 등 결함을 지적했다. 보좌관이 K11 복합 소총을 들어보이고 있다. 결국 K11 사업은 지난해 중단됐다. 변선구 기자

차기 복합형 소총에 앞서 만들었던 K11 복합 소총은 지난해 12월 4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사업 중단이 결정됐다. 공중 폭발 유탄 발사기와 자동 소총을 결합한 이 소총은 한때 미래형 총기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결함이 잦아 결국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2020년 새해가 밝으면서 이 상상도는 밀리터리 매니어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2020년이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던 국방부’라는 식의 우스갯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2020년 미래 병사는 당시 기술 개발 동향을 검토한 뒤 제시한 미래상”이라며 “개발 목표라기보다는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형철 육군 자문위원은 “국방부와 ADD는 당시 미국 육군의 '랜드 워리어(Land Warrior)'나 '퓨처 워리어(Future Warrior)'와 같은 미래 전투 체계 개발 사업을 상당히 따라 했다”며 “미국에서도 이들 사업을 그만두거나 목표치를 낮춰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리어플랫폼으로 무장한 특수전사령부 국제평화지원단 한빛부대원. [연합뉴스]

워리어플랫폼으로 무장한 특수전사령부 국제평화지원단 한빛부대원. [연합뉴스]

대신 육군은 미래 병사의 대안으로 ‘워리어 플랫폼(Warrior Platform)’을 추진하고 있다. 워리어 플랫폼은 개인 전투원의 전투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전투복과 장구류를 개선한 뒤 나중에 하나로 통합한 전투체계다. 미래 병사보다는 소박한 편이다. 2026년 이후 미래 병사와 비슷한 체계를 내놓는 게 육군의 바람이다.

"2012년 8월까지 견마 로봇 나온다"

이처럼 계획상 2020년대에 나와야 했지만, 결국은 나오지도 못한 무기ㆍ무기체계가 꽤 있다. 눈이 너무 높았거나, 기술이 아직 모자라거나,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2006년 국방부는 2012년까지 전방 철색선을 초병 대신 로봇이 지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열화상추적장치ㆍ적외선추적장치 등 첨단 장비를 탑재한 로봇이 경계를 서다 적을 발견하면 경고를 하고 암구호를 묻는다는 개념이다. 필요하면 기관총을 발사해 적을 제압할 수도 있다.

짐 나르는 로봇AI 견마로봇은 산악지형에서 무거운 군수물자를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짐 나르는 로봇AI 견마로봇은 산악지형에서 무거운 군수물자를 원하는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국방부는 또 2012년 8월까지 6년 동안 예산 334억원을 투자해 ‘견마(犬馬) 로봇’을 만든다고 발표했다. 병사 대신 위험 지역에 들어가거나 지뢰를 탐지 또는 군수 물자를 나르는 임무를 맡는 로봇이었다. 시가지 전투에 투입한다는 무인전투 체계 개발이 포함했다. 2013∼2020년 기간에 1∼2단계로 나눠 추진한다는 장기 계획도 내놓았다.

하지만 2012년을 훌쩍 넘겼지만 꿈꿨던 수준에 도달하진 못했다. 현재 비무장지대(DMZ)에 설치한 과학화 경계시스템은 센서로 침입을 탐지하고 영상장비로 원격 감시하는 수준에 그친다. 로봇이 경계를 서면서 능동적으로 탐지하고 암구호를 묻겠다던 원래 계획과는 거리가 크다. 무인 전투체계도 아직 실전에서 볼 수 없다.

견마 로봇은 아직 실전에 투입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2019년 1차 코리아 매드 사이언티스트 콘퍼런스’에서 개발 중인 견마 로봇이 등장했지만,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었다. 최근 빨라진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난관에 막혔던 견마 로봇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는 평가다.

2018년까지 시제품이 나오기로 했던 '아이언맨' 

'우주인을 고문해 얻은 기술로 첨단 무기를 내놓는다'는 미국에서도 무기 사업이 도중 고꾸라지기도 한다. 미군 특수작전사령부(SOCOM)은 지난해 2월 '전술 공격 경무장 요원 특수복' 계획을 그만둔다고 밝혔다. 머리글자를 따 그리스 신화 속 로봇 거인을 뜻하는 '탈로스(Talos)'라 불리는 프로젝트였다. 2013년 특수작전사령부는 "2018년까지 시제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미 특수작전사령부의 탈로스. [미 특수작전사령부 유튜브 계정 캡처]

미 특수작전사령부의 탈로스. [미 특수작전사령부 유튜브 계정 캡처]

탈로스는 미국판 '미래 병사'다. 이 특수복을 입은 미군 특수부대 요원은 거의 아이언맨처럼 변신한다. 강화 외골격 기능으로 힘이 세지고, 특수방탄으로 어지간한 총탄은 다 막는다. 헬멧 속 화면엔 주변 상황이 증강현실(VR) 기술을 거쳐 나타나며, 헬멧으로 본부 또는 다른 특수부대 요원과 통신할 수 있다. 그러나 약속했던 2018년이 지나서도 탈로스의 시제품은 나오지 않았다.

특수작전사령부는 5번째 시제품인 Mk. 5까지 완성했다. 성능이 시원찮았다고 한다. 기술력 부족 때문이었다. 탈로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은 현재 있기는 하지만, 탈로스의 성능을 낼만큼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 특수작전사령부가 탈로스 실패 이후 눈을 화 낮춰 개발 중인 방탄.  [사진 미 특수작전사령부]

미 특수작전사령부가 탈로스 실패 이후 눈을 화 낮춰 개발 중인 방탄. [사진 미 특수작전사령부]

특수작전사령부는 탈로스를 포기했지만, 대신 더 가볍고 더 튼튼하고 위장 효과가 뛰어난 방탄복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구에서 가장 무거운 장갑차량'

미 육군은 2014년 지상전투차량(GCV) 개발을 더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5년 GCV 개발 완료가 미 육군의 목표였다. GCV는 미 육군의 M2 브래들리와 M1126 스트라이커 등 장갑차량을 대체할 기대주였다.

미 육군의 지상전투차량(GCV). [사진 BAE]

미 육군의 지상전투차량(GCV). [사진 BAE]

브래들리와 스트라이커는 방어력이 약하다는 평가르 받았다. GCV는 1개 분대 9명을 모두 태우고 다니면서, 지뢰나 급조폭발물(IED)도 견딜 정도로 튼튼했다. 게다가 하이브리드 엔진을 채택해 조용히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3년 미 의회의 의회예산처(CBO)는 보고서를 내고 GCV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예산 때문이었다. 2030년까지 개발과 생산, 배치에 모두 290억 달러(약 31조원)이 든다는 전망이 나왔다. CBO는 차라리 브래들리를 개량할 것을 미 육군에 권고했다.

무게도 단점이었다. GCV는 차체에 장갑을 덕지덕지 붙였기 때문에 70t이 넘었다. 미 육군의 주력 탱크인 M1 에이브럼스(66.8t·M1A2C 기준)보다 무거웠다. 미 육군이 실전 배치했더라면, GCV는 지구에서 가장 무거운 장갑차량이란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한 때 '응징자'로 주목을 받았지만…. 

미 육군이 유탄발사기를 대신하려 했던 XM25 공중폭발유탄발사기는 2018년 공식적으로 '사망'했다. 최신 사격통제장치를 단 이 발사기는 25㎜ 공중폭발탄을 적의 머리 위에서 터뜨릴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 시제품이 보내져 실전 테스트도 거쳤다. 실제 써 본 미 육군 장병은 발사기를 '응징자(Punisher)'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XM25의 미래는 장밋빛인 줄만 알았다.

미 육군의 XM25 공중폭탄발사기. [사진 미 육군]

미 육군의 XM25 공중폭탄발사기. [사진 미 육군]

하지만, 무게가 6.4㎏으로 무겁고, 탄의 위력이 약하다 등 XM25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또 2013년 결함 때문에 사고가 났다. 2017년 미 육군은 공중폭발유탄발사기의 유효성이 있다는 입장을 내왔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8년 미 육군은 XM25 사업을 아예 폐기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퇴역 연설에서 미 육군의 군가를 인용하면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Old soldiers never die. They just fade away)"고 말했다. 무기·무기 체계 개발 사업도 마찬가지다. 도중 탈락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가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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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전문 월간지인 '플래툰'의 홍희범 편집장은 이렇게 말했다.

"미군은 야심 찬 목표를 설정하고 차기 장비 사업을 진행했지만, 예산이나 실전에서의 문제점 등 현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실패했다. 하지만 실패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면 거액이 투입한 프로젝트도 과감하게 취소하고 대안을 찾는다는 미군의 태도다. 또 실패한 프로젝트라도 관계자를 문책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어도 그동안 매몰 비용과 노력이 아까워 쉽게 끊지 못하고, 또 일단 실패하면 막무가내로 책임자부터 찾아 처벌하려는 우리나라와는 크게 대조적이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 씨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무기체계 개발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는 것 외에도 충분한 계획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냉정함이다. 계획보다 미달할 경우 과감히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과대 포장을 우선하면서 개발자들에게 실패의 중압감을 가중해왔다. 이런 풍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철재·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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