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 책 낸 장택상 전 총리 딸 장병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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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아이들은 공부를 무슨 대단한 일로 생각하는 듯해요. 마치 엄마.아빠를 위해 공부를 마지 못해 해주는 것 같아요. 부모들도 자식들이 공부한다고 하면 꼼짝 못해요. 그러니 아이들이 '공부하는 왕자 또는 공주'가 되는 거죠."

초대 외무부 장관(1948년)과 국무총리(52년) 등을 지낸 고(故) 창랑(滄浪) 장택상(張澤相.1893~1969) 전 국무총리의 셋째딸 장병혜(張炳惠.72.미국 뉴저지주 거주) 전 미국 시튼홀대 교수. 사교육 한번 시키지 않고도 자신이 낳지 않은 세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그가 자신의 자녀교육 비결을 담은 '아이는 99% 엄마의 노력으로 완성된다'(중앙M&B)를 최근 펴냈다.

지난달 24일 고국을 찾은 張씨는 "엄마는 세상의 잡다한 육아이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며 "자녀를 잘 기르고 싶다면 부모부터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부모는 자식들의 인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이른바 '멘터(mentor)'가 돼야 한다"며 "아버지 창랑은 자신에게 '최고의 멘터'였다"고 회고했다.

張씨는 59년 중국 출신의 양각용(楊覺勇.84) 전 조지타운대 교수와 결혼했다. 당시 남편은 이미 사별한 아내와의 사이에 낳은 세 자녀를 두고 있었다. 張씨 부부 사이에는 자녀가 없다.

"결혼 초기에 아이들은 엄마의 죽음으로 뿔뿔이 흩어져 남의 가정에서 자라서 그랬는지 가정의 의미를 몰랐어요. 매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양보하는 법이 없었죠. 아들은 어릴 때 뇌에 충격을 받아 자주 발작을 일으켰고요. 남편은 바쁜 연구활동으로 1년에 2백일 넘게 출장을 다녔으니 아이들 교육은 완전히 제 몫이었죠."

큰 딸 앨리스(51)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해 현재 미국 뉴욕의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큰 아들 피터(49)는 하버드대 비즈니스 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해 민간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또 16세 때 예일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막내딸 낸시(46)는 현재 국제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張씨는 창랑의 가르침이 자신의 자녀교육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오전 5시30분에 저희들을 깨워 '어려움은 없느냐''네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등을 묻곤 했어요. 흐트러진 모습을 용납하지 않으셨고요. 또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들은 돈을 벌어 고향 부모에게 보내는 효녀다. 절대로 너희들이 할 일을 시키지 말아라'라고 당부하셨어요. 저는 일곱살 때부터 제 옷을 직접 빨아 입었어요."

그는 또 아버지의 독특한 경제교육도 소개했다. "아버지는 어느날 초등학교에 다니던 우리 형제를 부르더니 '너희들도 이제 꽤 자랐으니 돈이 필요할 것이다. 돈을 넣은 바구니를 거실에 둘테니 가져다 써라'라고 하셨죠. 처음엔 내심 좋아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형제 모두 각자 필요한 만큼만 돈을 가져갔어요. 그때부터 필요 이상으로 돈을 헤프게 쓰지 않게 됐어요."

張씨는 밤 늦게까지 서재에서 책을 봤던 아버지의 모습을 본받아 자신도 가급적 저녁 약속을 피하고 거실에서 아이들과 책을 봤다고 한다. "부모들이 자신들은 TV를 보면서 자녀들에게만 공부를 다그치는 것은 잘못됐다고 봐요. 아이들이라고 왜 TV를 보고 싶지 않겠어요."

그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떠나던 아이들에게 자신이 여러 차례 꿰매 낡아진 털양말 한켤레씩 선물한 일화를 소개했다. "아이들에게 '발바닥에 닿는 까끌까끌한 감촉을 느껴라. 그러면 네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 것이다'라고 했죠. 전 미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약자 입장인 아이들이 자신의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해야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고 봤어요."

하재식 기자<angelha@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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