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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편복 또는 박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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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조선 시대 학자 홍만종(1643~1725)이 1678년 펴낸 평론집 ‘순오지(旬五志)’의 부록에 속담 풀이가 있다. 그 중 ‘편복지역(蝙蝠之役)’이라는 게 있다. 편복은 박쥐의 한자어다. 편복지역을 우리말로 박쥐구실이라고도 한다. 날짐승이 모인 봉황의 잔치에 박쥐는 “네 발 가진 짐승”이라며 가지 않았다. 박쥐는 길짐승이 모인 기린의 잔치에도 “날개가 있다”며 불참했다. 구실(핑계)을 대고 피한 걸 빗댔다.

아, 그러고 보니 서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길짐승(포유류)과 날짐승(조류)이 전쟁을 벌이는 사이, 날개를 꺼냈다 숨겼다 하면서 양쪽을 오가다가 버림받은 박쥐 이야기. 이솝우화다.

박쥐는 포유류 박쥐목 동물이다. 새(조류)가 아니라는 얘기다. 진화 계통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화석이 많지 않아서다. 신생대 초기인 팔레오세(약 6500만년 전)에 식충류(두더지)에서 진화한 것으로 추측한다. 하늘을 날게 된 두더지라는 얘기다.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밤눈이 밝아 ‘밝쥐’라는 것과 야행성이라 ‘밤쥐’라는 것. 어쨌거나 박쥐라는 이름과 달리 쥐(설치류)도 아니다.

박쥐는 흡혈귀나 마녀를 떠올리게 한다. 야행성인 데다 주로 동굴에 살아서다. 눈이 퇴화한 대신 초음파를 사용하다 보니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에선 박쥐를 약재로 사용했다. 박쥐를 먹으면 박쥐처럼 밤눈이 좋아진다는 속설 때문에 동서고금에 걸쳐 식용한 사례도 있다.

우한 폐렴 공포가 박쥐를 다시 소환했다. 원인 병원체인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로 박쥐가 지목된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질환이었던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박쥐가 1차 숙주로 꼽혔다. 바이러스가 박쥐에서 2차 숙주(사스는 사향고양이, 메르스는 낙타)를 거쳐 사람에게 전염됐다는 거다. 우한 폐렴의 2차 숙주로 뱀 또는 사향고양이 얘기가 나왔다.

메르스 유행 당시 보건복지부가 ‘낙타와 접촉을 피하라’ ‘멸균되지 않은 낙타유나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 섭취를 피하라’ 등 경고문을 내놨다가 비웃음을 샀다. 작은 가능성이라도 차단해서 나쁠 건 없다. 당분간 박쥐를 피하는 게 좋겠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