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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기대했던 수출·관광 ‘우한쇼크’ 만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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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27일 서울 SRT수서역에서 직원이 열차 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우한 폐렴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뉴스1]

27일 서울 SRT수서역에서 직원이 열차 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우한 폐렴 공포가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뉴스1]

“미·중 무역 전쟁이 마무리되는 것 같아 기대감이 높았는데, 이제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까지 신경을 써야 할 판이다.”

기업들, 우한 폐렴 대응 비상 #대중국 수출비중 26% 한국 큰 악재 #유커 3000명 충남 방문 전격 취소 #일본 증시 -2%, 10개월만 최대 하락 #정부 “불안 확대시 시장 안정 조치”

연휴 마지막 날인 27일, 수화기 너머 들리는 한 대기업 임원의 한숨 소리는 유독 컸다. 그는 “지정학적 위기에 더해 바이오 위기까지 덮친 여태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악재가 찾아왔다”며 “연말에 짠 사업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가 국내 기업을 덮치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중국 소비 시장 위축이 큰 걱정으로 떠올랐다. SK종합화학 등 국내 기업의 중국 우한 탈출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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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 업계 특성상 직원들의 중국 출장이 잦은 SK이노베이션은 사실상 중국 출장 금지령을 내린 상태다. 꼭 필요한 경우 최소한의 인원에 한해 담당 임원 결재를 얻어야만 중국 출장에 나설 수 있다. LG전자도 오는 28일부터 우한뿐 아니라 중국 전역 출장을 금지하기로 했다. 현지 법인에 있는 기존 출장자 역시 조속히 복귀하기로 했다.

포스코그룹은 중국 정부 등의 대응을 지켜보며 주재원 철수 검토에 들어갔다. 포스코는 우한에서 자동차용 강판을 가공하는 가공센터를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광저우에 공장을 운영 중인 LG디스플레이도 임직원의 중국 출장을 자제하기로 했다. 한화와 효성그룹 등도 우한을 비롯한 중국 출장을 자제할 것을 직원에게 권고한 상태다. 삼성전자도 외교부의 여행경보 3단계(철수 권고)에 맞춰 해당 지역으로의 출장을 자제하기로 했다.

기업은 특히 중국 시장 위축을 걱정한다. 국내 기업의 중국 수출 비중은 절대적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중국을 상대로 한 수출액은 한국의 전체 수출액 중 26%를 차지했다.

정부로선 예상치 못한 악재를 만났다. 대형 전염병은 직간접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9일 2020년 경제성장률을 2.4%로 전망했다. 지난해(2.01%)보다 0.39%포인트 올려잡았다. 정부가 올해 경기를 낙관한 근거는 외부 여건 개선이었는데 우한 폐렴이 발생한 것이다. 예상 못 한 변수여서 경기 회복세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특히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완화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유커의 한국 방문에 찬물을 끼얹었다. 실제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한국 여행을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27일 충청남도에 따르면, 2월 방한할 예정이었던 3000여 명의 중국 단체 관광객이 이날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중국이 자국민의 해외 단체여행을 제한하면서 유통 대목인 춘제(春節·설) 연휴 기간 방한하는 유커가 줄어들 전망”이라며 “완만한 증가세를 보인 소매판매를 비롯해 관광·유통 업종을 중심으로 한 서비스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우한 폐렴의 국내 확산 속도가 빨라질 경우 국내 소비·여가 활동마저 위축될 수 있다.

이번 우한 폐렴은 여러모로 2003년 유행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비교된다. 사스는 중국·대만·홍콩·마카오에서 발생했지만, 교통수단의 발전, 세계화로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확산했다.

사스의 경제적 충격은 상당했다. 직격탄을 맞은 홍콩의 경우 사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17억 달러로 추정했다. 싱가포르는 사스로 인해 2003년 GDP 성장률이 1~1.5%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한국의 2003년 2분기, 특히 5월 수출증가율이 일시적으로 크게 위축한 것을 모두 사스 영향이라고 가정할 경우 2분기 GDP 성장률을 1%포인트(연간성장률 0.25%포인트) 하락시킨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경제성장률 문제만이 아니다. 1999년부터 계속 증가하던 양국 간 관광객 수가 사스 발병 직후 동반 감소했다. 2002년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 수는 212만 명이었지만 2013년엔 194만명으로 꺾였다. 같은 기간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도 53만 9400명에서 51만 2700명으로 줄었다.

사스 땐 -0.25%P, 메르스 땐 -0.2%P…‘전염병 리스크’ 성장률 깎아먹어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27일 ‘우한 폐렴’ 확산 우려로 전 거래일보다 483.67포인트(2.03%) 내린 2만3343.51로 거래를 마쳤다. 10개월 만의 최대 하락 폭이다. 도쿄 증시 1부 전 종목 주가를 반영하는 토픽스(TOPIX) 지수도 27.87포인트(1.61%) 떨어진 1702.57로 마감했다. [EPA=연합뉴스]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27일 ‘우한 폐렴’ 확산 우려로 전 거래일보다 483.67포인트(2.03%) 내린 2만3343.51로 거래를 마쳤다. 10개월 만의 최대 하락 폭이다. 도쿄 증시 1부 전 종목 주가를 반영하는 토픽스(TOPIX) 지수도 27.87포인트(1.61%) 떨어진 1702.57로 마감했다. [EPA=연합뉴스]

국내에서만 환자 186명, 사망자 38명이 발생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는 국내 외국인 방문자 규모가 2015년 5월 133만명에서 6월 75만명으로 급감했다. 그러면서 소비가 직격탄을 맞았다. 2015년 6월 소매판매액지수는 전월 대비 3.2% 급감했다. 2011년 2월(-7.3%) 이후 4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이었다. 그 여파로 그해 2분기 GDP 성장률은 0.4%에 그쳤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메르스의 영향으로 2015년 한국 GDP는 0.2%포인트 감소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염병은 국가 간 교류·무역을 방해하기 때문에 수출 주도국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우한 폐렴처럼 중국이 핵심 발병지인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미치는 부작용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한 폐렴이) 확산하지 않을 경우 단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후 경기가 반등하겠지만 반대의 경우 경제에 상당한 후유증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금융시장 불안이 확대될 경우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에 따라 시장 안정조치를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중국 우한 폐렴의 확산 동향 및 대응 상황을 점검했다. 참석자들은 국제금융시장이 증시 등에서 변동성이 다소 확대됐지만, 국내 시장과 관련해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함께했다.

다만 우한 폐렴의 향후 전개 양상을 속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국내외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정부는 시장 불안이 확대될 경우 시장 안정 조치를 단행하기로 했다.

지난 24일 미국 다우지수는 0.58% 내렸고, 27일엔 일본 닛케이지수가 2.03% 하락했다. 반면 연휴 기간 달러화·엔화 등 안전 통화를 비롯해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금값은 올랐다.

강기헌·박성우·홍지유 기자,
세종=김기환·허정원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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