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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평전을 읽고]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가?

중앙일보

입력

그는 쿠데타 공신이었다. 인조반정(1623년)에 가담해 광해군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최명길 얘기다. 쿠데타 성공 후에는 이조참판에 오르면서 인사에도 관여했다. 막강한 권세. 오늘에 비유하자면 '촛불 실세' 쯤 됐을 거다.

박엽이라는 평안도 관찰사가 있었다. 광해군의 사람이었다. 왕의 총애를 업고 권력을 마구 휘둘렀다고 전해진다. 살생부에 올랐다. 죽여라! 쿠데타 세력은 그를 잡아들였다.

적폐청산 대상 박엽. 이런 그를 살려야 한다고 나선 공신이 있었으니 바로 최명길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의 최명길.

영화 '남한산성'에서의 최명길.

"나라에 닥칠 병란으로는 북쪽 오랑캐가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장수의 지략을 지닌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 이 사람을 죽이면 우리나라의 장성(長城)을 허무는 것이니….

최명길이 최고 쿠데타 공신 김류에게 보낸 편지다.

왜 그랬을까?

박엽은 오랑캐가 무서워하는 최고의 군사전략가였다. "박엽이 평안 감사가 되자 오랑캐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10년간 조선을 넘보지 못했다"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중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외교 브레인'이기도 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미묘한 외교 행보를 이어가면서 힘의 변화를 피부로 실감한 인물이다. 광해군의 대리인으로서 누르하치 측과 외교 통로를 유지하기도 했다.

박엽을 살려라! 이는 곧 오랑캐 침입을 대비해야 한다는 최명길의 외침이었다. 그는 북쪽에서 일고 있는 힘의 변화를 예민하게 관찰했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했다. 경험과 능력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하다면 그가 누구든 주저 없이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인사 철학이었다.

'최명길 평전'의 저자 한명기 명지대 교수는 "당시 공신들로서는 드물게 정치와 외교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아는 인물"이라고 명길을 평가한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가?

오랑캐와 싸워 이길 장수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고 나선 신하가 간신인가, 아니면 패주(廢主) 편에 섰다는 이유로 유능한 전략가를 죽여 없애자는 자가 충신인가?

박엽은 결국 반정 직후 처형됐다. 덕택에 오랑캐들은 앓던 이를 빼게 됐다. 병자호란의 비극은 그렇게 싹트고 있었다.

전쟁은 기어이 터지고 말았다. 1636년 12월 5일 압록강을 넘은 청나라 군대는 14일 무악재에 나타났다. "뭐라? 녹번 무악재에? 닷새 만에? 우리 군사들은 뭘 했단 말인가?" 인조는 패닉에 빠졌다. "가자, 강화도로.." 허겁지겁 짐을 싸 경복궁을 나섰다. 숭례문(남대문) 쯤 왔을 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온다. '전하, 강화도 길이 막혔습니다.' 절망이다. 여기서 잡혀 청나라로 끌려가야 하나….

영화 '남한산성'에서의 김상헌

영화 '남한산성'에서의 김상헌

다들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오랑캐와 싸워야 한다고 날뛰던 척화파 신하들은 머리를 박고, 꽁무니를 뺐다. 공신 일부는 지 식솔들 피난 보내기에 바빴다. 재물을 다 긁어모아 배에 실어 보내기도 했다.

이 와중에 사태 해결을 하겠다고 나선 신하가 바로 최명길이었다.

"신이 단기로 달려가 적장에게 까닭 없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온 까닭을 묻겠습니다. 오랑캐가 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의 발굽 아래서 죽을 것이요, 다행히 서로 이야기가 되면 잠시라도 칼날을 멈추게 할 것입니다. 그 사이 전하께서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시옵소서….

산성은 춥고 배고팠다. 꼭 막힌 산성에 들어와서도 최명길은 외로웠다. . 입만 열면 '사대(事大)의 의(義)'를 외치는 척화파 들은 최명길을 헐뜯고, 공격했다. 그는 '오랑캐를 옆에 끼고 임금을 협박한 흉악한 인간'이자, '오랑캐에다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간신'이었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가?

임금을 위해 목숨을 버려서라도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신하가 간신인가, 아니면 전쟁 통에 제 마누라를 나루터로 빼돌리는 자가 충신인가?

전쟁은 끝났다. 인조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찌었다. "홍타이지는 나를 어떻게 할까? 심양으로 끌고 갈까, 아니면 이 자리에서 처형할까?" 쿵쿵 머리를 찧으면서도 인조의 걱정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홍타이지가 죽이라면 죽는 것이요, 끌고 가라면 끌려가야 했다.

가라!

홍타이지는 인조를 풀어줬다. '황제'로서의 권위와 아량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휴~~! 인조는 살았다. 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임금과 백관이 송파 나루로 몰려나왔다. 한강을 건널 배는 많지 않았다. 서로 타려 아우성이었다. 홍타이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는 조바심…. 임금의 어의까지 잡아당기며 다투어 배에 올랐다. 고결한 척, 정의를 외쳤던 그들은 제 살길 찾느라 임금이고 뭐고 없었다.

최명길은 배에 오르지 않았다. 전후 처리를 위해서였다. 그는 청군 진영에 남아 억류된 채 심양으로 떠나야 했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돌봤다. 청군의 철수 과정을 논의했다. 병자호란의 시작과 끝을 최명길이 맡아 한 셈이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가?

죽음의 공포가 사라지지 않은 적진에 남아 세자를 돌보는 신하가 간신인가, 아니면 지 살겠다고 임금 어의를 끌어당기면서 배에 오르려는 자가 충신인가?

'황제' 홍타이지는 돌아갔다. 인조는 '더러운 군주'가 됐다. '사대의 의'를 주장하던 척화 신들은 조정을 경멸했다. '수양산으로 들어가 풀뿌리를 캐 먹을 질지언정 오랑캐에 머리를 숙인 왕은 받들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그런 와중에도 인간 사냥질을 해댔다. 전쟁 중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신하들을 찾아내 준열하게 꾸짖었다. 오로지 비난과 냉소만 판쳤다.

최명길은 건강체질이 아니었다. 골골했다. 그인들 쉬고 싶지 않았겠는가. 피하고도 싶었을 것이다. '낙향'이 고결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기, 그러나 그는 조정에 나왔다. 산적한 전후 처리는 그의 몫이었다. 민생을 다독여 민심을 안정시켜야 했다. 그는 또다시 동분서주한다.

그가 당면한 일 중의 하나가 환향녀(還鄕女) 문제였다. 청나라로 잡혀갔다.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여인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논란이 됐다. '정절을 잃은 여인과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사대부 요구가 빗발쳤다. 최명길은 단호했다. '따뜻하게 맞이하지는 못할망정, 그 고생 또 고생 끝에 돌아온 여인들을 내치는 게 말이 되는가?' '고결'한 사대부들은 최명길을 또 공격했다. 최명길은 이제 '강상의 윤리를 내팽개친 원흉'이 됐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가?

민생을 보듬기 위해 헤진 몸을 이끌고 나서는 신하가 간신인가, 아니면 지켜주지도 못한 여인 정절 잃었다고 내치는 게 충신인가?

최명길은 유연했다. 적폐청산 대상으로 몰린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고 구명에 나섰다. 오로지 백성 현실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펼쳐 나갔다. 그러기에 적에게 유린당한 여인들을 따뜻하게 품고자 했다.

냉철하게 관찰했고, 현실에 바탕을 둔 전략을 펼쳤다. '대국이 소국에 못 할 짓이 없는 것과 같이, 소국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못 할 짓이 없다'는 생각으로 항복 문서를 썼다. 명분에 매몰되지 않았다.

우리 현실은 병자호란 당시보다 결코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의 거대한 파워게임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고, 일본과도 팽팽한 긴장이다. 그런데도 안에서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가 갈려 서로 으르렁댄다. 통합 리더십은 기대하기 어렵다.

'충신'이 필요한 시기다.

이 난국을 헤쳐나갈 충신은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충신'이 온다면 혹 최명길과 같은 모습은 아닐까….

2020년 아침, 역사 속 최명길을 다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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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명기 명지대 교수의 저서 '최명길 평전', '병자호란1,2'를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한 교수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차이나랩=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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