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선거법 보완해야" 선관위 요청에 길 잃은 '학교 가이드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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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학생들이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 18세 선거연령 하향 패스트트랙 본회의 통과 촉구 행동'을 하고 있다. [뉴스1]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학생들이 지난달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만 18세 선거연령 하향 패스트트랙 본회의 통과 촉구 행동'을 하고 있다. [뉴스1]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18세 선거권 도입에 따른 입법 보완을 요청하면서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선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13일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 내 선거운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중앙선관위의 유권해석에 기반을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면서 "선관위가 직접 판단을 내놓지 못하면 가이드라인 마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31일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 때 투표권을 갖게 되는 고3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생용 선거법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선관위·교육부와 협의해 개학 전인 2월 중에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었다.

이런 계획은 지난 12일 선관위가 "선거권 연령 하향으로 고등학교의 정치화 및 학습권·수업권 침해 등 교육 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며 국회에 공직선거법 입법 보완을 요청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상 예비후보자가 고등학교에서 명함 배부·연설·의정 보고회 개최를 해도 되는지와 사립학교 교원도 선거운동 금지 대상인지를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현재는 별도의 규정이 없어 선거 이후 법적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고교생 유권자를 고려하지 않은 개정 선거법의 허점을 대비하려 한 교육청 등 교육당국의 가이드라인 마련 계획도 입법 논의 이후로 사실상 밀려나게 된 셈이다.

교육당국은 선거법상 명확한 규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가이드라인' 마련이 교육현장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미 만 18세 선거권이 생겼으니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을 순 없다"면서도 "대표성 있는 교육부와 선관위의 판단이 없으면 추진하기 부담스럽고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일단 보완 입법이 이뤄지거나 무산되는 두 가지 가능성을 바탕으로 2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선관위가 입법을 요청한 건 유권해석을 내놓기 어렵다는 의미로 본다"면서 "보완 입법이 이뤄지거나 이뤄지지 않는 두 가지 상황을 고려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국회의 입법을 지켜보며 대비하겠다고 밝혔지만, 교육계에서는 한달여 남은 2월까지 보완 입법이 이뤄지고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지난달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고3까지 정치판 끌어들이는 만 18세 선거법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지난달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고3까지 정치판 끌어들이는 만 18세 선거법 반대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뉴스1]

교육계에서는 "예정된 혼란"이란 비판이 나온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대변인은 "이런 혼란을 예상해서 선거연령 하향 전부터 다른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정치권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교육계의 우려를 무시하고 날림 입법한 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대변인은 "선관위의 보완 입법 요청은 늦었지만, 다행으로 생각한다"면서 "학교 내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교내 선거활동을 명확히 금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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