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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구조실패' 김석균 영장 기각, 법원 발목 잡은 5년9개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8일 영장실질심사 당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해경은 아이들의 목숨에는 한 치 관심도 없이 의전만 챙겼습니다. (유가족 측)”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8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8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지휘부가 영장 심사를 받던 날 장훈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왼쪽 두번째)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지휘부가 영장 심사를 받던 날 장훈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왼쪽 두번째)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 사건이 다시 한번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승객 303명이 숨지고 142명이 다친 책임이 당시 해경 ‘윗선’에도 있는지 묻기 위해서다. 이 사건을 재수사하는 세월호 특별수사단(임관혁 단장)은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김수현 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 등 해경 간부 6명을 구속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지난 9일 나온 법원의 답은 “구속할 수 없다”다. 법원은 현시점에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전부 기각했다. 세월호 참사의 무게를 모를 리 없는 법원이 왜 이런 판단을 내린 걸까.

“구조 실패 처벌은 하늘의 별따기”

김 전 청장 등이 받는 주된 혐의는 ‘업무상 과실 치사상’이다. 구조 지휘 업무를 게을리해 승객을 죽거나 다치게 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해경 지휘부는 승객에게 하선 명령을 하지 않았고 학생들이 타야 할 헬기를 자신들의 의전용으로 이용했다. 해경이 하선 명령을 했다면 전원 구조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는 전문가의 증언도 있다. 다만 이번 영장에 헬기 관련 의혹은 제외됐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당시 해경 등이 침몰해가는 세월호 선박에 대해 구조작업을 벌이는 모습. [뉴스1]

지난 2014년 4월 16일 당시 해경 등이 침몰해가는 세월호 선박에 대해 구조작업을 벌이는 모습. [뉴스1]

법조계는 형사 처벌까지는 넘어야 할 문턱이 많다고 지적한다. 재난 현장 지휘자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인정된 판례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최주필 변호사(법무법인 메리트)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구조자가 그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성립되는 게 아니라 해당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이경)는 “경찰이나 소방관이 구조를 잘 못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사례가 쏟아진다면 그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지 않겠느냐”며 “업무상 과실 적용 범위는 좁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29명의 사망자를 낸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비슷한 사례다. 당시 유족들은 부실 대응 논란이 있던 소방 지휘부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사후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처벌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무리이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었다. 세월호 역시 이런 ‘결과론’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5년 9개월 시간이 발목 잡았다

참사 이후 5년 9개월이 시간이 지난 것도 구속에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소시효가 지난 건 아니지만 이미 수사를 통해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가 완료된 상태다. 법원으로선 이제 와서 해경 지휘부를 구속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을 거라는 해석이다.

판사 출신 도진기 변호사는 “영장 담당 판사가 무엇보다도 시기 문제를 가장 염두에 뒀을 것”이라며 “5년 9개월 동안 여러 번의 수사와 조사를 통해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는데 이제 와서 증거 인멸을 우려해 구속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세월호 특수단 내에서도 시간이 많이 흐른 점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에 고심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녕 변호사는 “거의 마지막 수사 기회인 만큼, 특수단으로서는 설령 발부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영장 청구 자체를 안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 봤다.

123정장 판례에 기대 건다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단장을 맡은 임관혁 수원지검 안산지청장. 우상조 기자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단장을 맡은 임관혁 수원지검 안산지청장. 우상조 기자

구속에 실패했어도 아직 결과를 예단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법원은 김 전 청장 등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도 “형사 책임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 근거로 든 게 2015년 11월 대법원이 김경일 전 목포해경 123정장에게 징역 3년을 확정한 판결이다. 이는 재난 사고에서 구조 책임자의 현장 지휘 과실을 인정한 국내 첫 판례다.

김 전 정장의 판결문에는 그의 상관인 “해경 지휘부에도 책임이 있다”는 문구가 적시됐는데, 여기서 말하는 해경 지휘부가 바로 김석균 전 청장 등이다. 특수단 관계자는 “당시 김 전 청장 등이 무전기 등을 통해 현장으로부터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는 정황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직권남용도 폭넓게 처벌하는데, 더 지켜봐야”

또 하나의 변수는 우리나라 사법 문화의 ‘특수성’이다. 외국에서도 대형 재난시 구조 실패 논란이 종종 빚어지지만 징계나 손해배상 소송으로 해결하는 게 일반적이다. 유독 우리나라가 형사 사건 의존도가 높다는 게 특수단 쪽 설명이다.

지난 2001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일본 아카시시 불꽃놀이 축제 사고 현장을 지휘한 경찰관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한 게 거의 유일한 사례다. 당시 몰려든 인파로 11명이 사망했다. 2015년 김경일 정장 유죄 판결이 일본에 이은 두 번째 사례라고 알려져 있다.

특수단 관계자는 “외국에 판례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며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 오히려 (이 사건 결과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직권남용죄도 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넓게 처벌하는 추세가 굳어져 가듯이 업무상 과실치사죄 역시 새로운 흐름의 판례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특수단은 김 전 청장 등에 대해 보완 수사를 거친 뒤 영장을 다시 청구할지를 검토하기로 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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