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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다미아니 출판사가 작품집 출간한 한국 사진가 이갑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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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다미아니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갑철 작가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 [사진 이갑철]

이탈리아 다미아니 출판사에서 출간한 이갑철 작가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 [사진 이갑철]

적막하다. 차고 마른 겨울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간 듯한 겨울 골짜기. 깊은 골짜기 안에 앉은 절간이 손톱만 하게 내려다보인다. 바스러질 듯한 나뭇가지는 겨울 햇살을 받아 날카롭게 빛나고, 골짜기의 빛과 어둠이 한 화면 안에 대치하고 있다. 발 시린 줄도 모르고 겨울 산길을 헤매던 사진가가 숨죽이고 포착한 '궁극의 순간', 이갑철(60) 사진작가가 오래 전 겨울 내소사에서 찍은 한 장의 흑백사진이다.

예술서적전문 출판사서 이갑철 사진집 출간 #"한국 사진 제대로 알릴 사진집 내고 싶다" 제안 #15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 '도시징후' 전

K-Photo 시대 신호탄

이탈리아 볼로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유럽의 주요 예술 서적 출판사인 다미아니 에디토레(Damiani Editore·이하 다미아니)에서 지난해 말 이갑철 작가의 사진집 『LEE Gap-Chul: THE SEEKER OF KOREA’S SPIRIT』을 출판해 눈길을 끈다. 다미아니는 마틴 파, 히로시 스기모토, 데니스 호퍼, 수전 메이슬라스 등의 세계적 작가의 작품집을 발간한 출판사로, 이곳에서 한국 사진작가의 작품집을 낸 것은 처음이다.

사진집 출간은 다미아니 출판사 측에서 먼저 한미사진미술관에 협업을 제안해 추진한 것으로 유럽에서 한국 사진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현상으로 주목된다.

이갑철 작가는 국내 사진작가들과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사진작가 중 한 사람. 그러나 해외 무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아 이를 아쉬워하는 작가들과 애호가들이 적잖았다.  사진계에서는 이갑철 작가를 필두로 한국의 더 많은 사진작가가 해외에 넓게 소개되길 바라는 기대가 크다. 이제는 K-POP과 한국영화뿐만 아니라  K-Photo 시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히로시 스기모토 사진집 낸 출판사  

다니아니 출판사와 한미사진미술관이 공동으로 출간한 이갑철 작가 사진집.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다니아니 출판사와 한미사진미술관이 공동으로 출간한 이갑철 작가 사진집. [[사진 한미사진미술관]

이탈리아 다미아니 출판사가 펴낸 사진집에 수록된 이갑철 작가의 작품. [사진 이갑철]

이탈리아 다미아니 출판사가 펴낸 사진집에 수록된 이갑철 작가의 작품. [사진 이갑철]

한미사진미술관에 따르면,  다미아니 출판사 측은 2018년 말 처음으로 협업을 제안해왔다.  다미아니 측은 "유럽 내에 한국 사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면서 "한국 사진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사진집을 기획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해 달라"고 요청해왔다.  한미사진미술관과  다미아니 측은 여러 작가를 후보로 논의한  끝에 그 첫 작가로 이갑철 작가를 선정했다.

다미아니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1950년대부터 예술과 사진 분야를 전문으로 작업해온 전통 있는 인쇄 기업 그라피체 다미아니에서 2004년 설립한 다미아니 출판사다. 고급 수작업 기술과 현대의 혁신적인 기술을 활용해 퀄리티 높은 예술·사진 서적을 출판해 왔으며 세계적 예술 작가들의 작업을 기획·출판하는 한편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도 적극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갑철은 어떤 작가? 

이갑철 작가는  경남 합천 출신으로 1984년 신구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필름 카메라 한 대를 들고 서울로 옮겨온 뒤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누비며 작업해왔다.  '타인의 땅'(1988), '충돌과 반동'(2002,2007), '기'(2007) 등 국내에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2002년 프랑스 몽펠리에서   개최된 '한국 현대사진전'과 2005년 파리 포토에서 전시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등 국내 다수 예술기관을 포함해 미국의  산타바바라미술관과 아시안 아트뮤지엄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한미사진미술관과 다미아니 출판사가 공동 발행하는 이번 사진집은 '적막강산', '기', '충돌과 반동' 그리고 최근작 '도시징후'까지 이갑철 작가의 사진 작업 전반을 살필 수 있도록 다양한 작품이 수록됐다.

"혼을 담아내는 사진가" 

          [사진 이갑철]

[사진 이갑철]

          [사진 이갑철]

[사진 이갑철]

미 휴스턴 포토페스트 창립자이자 전 예술총감독인 웬디 와트리스(Wendy  Watriss)는 사진집에 수록한 글에서  이갑철 작가를 가리켜 "혼을 담아내는 사진가"라고 소개했다.  와트리스는 "1999년 그의 작품을 처음 본 이래 이갑철 작가의 작품을 지켜봐 왔다"며 는  "그의 사진은 거칠고 야생적이며, 아름답고, 제례 의식의 동작들로 가득하며, 자연과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고 소개했다.

와트리스는 이어 "(그의 사진은) 모호하고, 고요하며, 밀도 있다"면서 "특히 한국 풍경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산(산)은 이갑철의 사진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고 적었다.

송수정 국립현대미술관 연구기획 출판팀장은 "(이갑철은)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라면 풍경이나 사람, 짐승이나 사물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자신의 방식으로 프레임에 불러들였다"면서 "그의 사진에 담긴 모든 풍경과 대상은 생명체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갑철의 행보는 사진을 화두로 씨름하는 구도자의 궤적을 닮았다"고 덧붙였다.

"도시 안에서 만난 적막강산"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에서 열리고 있는 '적막강산-도시징후'에 선보인 작품. [사진 이갑철]

한미사진미술관 삼청별관에서 열리고 있는 '적막강산-도시징후'에 선보인 작품. [사진 이갑철]

한미사진미술관에서는 이갑철 사진전 출간을 기념한 전시를 삼청별관에서 '적막강산-도시징후'를 열어왔다. 이 전시는 이제 15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적막강산-도시징후'는 이갑철 작가가 촬영한 26점의 도시 사진을 모은 자리.  손영주  한미사진미술관 학예실장은 "작가의 대표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도시 작업에서도 프레임을 벗어난 화면 구성이나 초점이 나간 피사체 등 이갑철 특유의 사진 문법이 돋보인다"며 "그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화면을 채운 도시의 피사체들이 아니라 사진의 '어두운 여백'이다"라고 말했다.

어두운 여백, 작가는 이것을 가리켜 '여흑'이라고 부른다. 여흑은 여백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어둡지만 무언가 일어날 듯한 에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징후들로 가득한 공간을 가리킨다.  "빛을 찍는 이유는 빛이 아니라 어둠을 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작가는 빛이 없는 어둠의 공간에 집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5일까지 열리는 '적막강산-도시징후' 개인전에서 선보인 이갑철 작가 작품. [사진 이갑철]

15일까지 열리는 '적막강산-도시징후' 개인전에서 선보인 이갑철 작가 작품. [사진 이갑철]

'적막강산-도시징후' 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갑철 작가 작품. [사진 이갑철]

'적막강산-도시징후' 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이갑철 작가 작품. [사진 이갑철]

전시장에서 만난 이갑철 작가는 "오랜 시간 우리나라 전국 곳곳을 다니며 자연과 도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왔다"며 "번잡하고 소음 가득한  도시 환경 가운데 선경(仙境)이 있다. 속세 안의 선경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1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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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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