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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걸작"···英건축계 오스카상 거머쥔 건 임대주택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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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환경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인식을 순수하게 반영한 고품질 건축물이다."

"사려 깊고, 휴먼 스케일에 맞고, 디테일까지 잘 살렸다." 

"이런 건물이 예외적인 건물이 되어선 안 된다. 앞으로 더 많이 지어져야 한다."  

최근 건축 전문가들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은 건물이 있다. 서민들을 위해 지어진 공공임대주택이다. 우리나라 얘기가 아니다. 영국 노리치 (Norwich)에 있는 공공임대주택 '골드스미스 스트리트(Goldsmith Street)' 프로젝트다.

영 노리치 골드스미스 스트리트 #올해 영국 최고의 건축물로 주목 #뻔한 디자인 벗어난 친환경 주택

이 공공임대주택은 지난 10월 영국 건축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스털링상(Sterling Prize)을 받고 크게 주목받은 데 이어 미국 언론으로부터도 관심을 받았다. 1996년에 시작된 스털링상은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가 해마다 영국에서 준공된 건축물 중 최고의 건축물을 선정해 수여한다. 올해 쟁쟁한 후보를 물리치고 지역 시의회가 주도해 지은 공공임대주택이 이 상을 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해 수상작은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해 블룸버그(Bloomberg) 유럽 본부 빌딩이었다.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최근 영국일간지 가디언과 디자인 전문 매체 '디진(Dezeen)'도 '올해의 최고 건축물 10' 중의 하나로 이 공공임대주택을 꼽았다. 가디언의 건축평론가 올리버 웨인라이트는 "나는 노리치(골드스미스 스트리트 프로젝트)에서 미래를 보았다"면서 이 프로젝트를 가리켜 "에너지 절감형 공공임대주택 혁명"이라고까지 추켜세웠다.

이들은 이 프로젝트의 어떤 점에 열광하는 것일까. 왜 이것을 새로운 혁신이라고 보는 것일까. 골드스미스 스트리트 프로젝트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초저에너지형(ultra-low-energy)으로 지었다

105가구가 입주한 이 주택단지는 7개의 블록으로 구성됐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이 프로젝트가 엄격한 패시브하우스(Passivhaus)표준에 따라 설계됐다는 점이다. 패시브하우스는 첨단 단열공법을 통해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해 짓는 것으로 이른바 친환경 주택을 말한다. 패시브하우스에서 거주자는 난방비를 아낄 수 있고, 에너지를 덜 소비함으로써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래형 주택으로 꼽힌다.

이 집들의 벽은 60cm 두께로 지어진 것은 물론 내부엔 기계식 환기 열회수 (MVHR) 장치가 설치됐다. 패시브하우스에 매우 중요한 시설이다. 영국왕립건축가협회는 "에너지 소비 절감을 집합 주택에 가져온 것은 큰 성과이며 이는 건축가가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여 얻은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패시브 하우스 인증을 받기 위해 설계자들은 창문 비율과 사이즈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다고 한다. 영국왕립건축가협회에 따르면, 패시브하우스 기준에 따라 설계된 가구의 연간 에너지 비용은 일반 가구보다 70 % 낮은 것으로 추산된다.

시의회가 주도, 준비에 10년 넘게 걸렸다

이 주택 단지는 약 12년 전인 2008년에 기획됐고, 캐시 홀리(Cathy Hawley)와 공모를 통해 당선된 런던의 미카일 리치스(Mikhail Riches) 건축설계사무소가 설계를 맡았다. 당초 시의회는 부지를 지역 주택 공급업체에 팔 예정이었지만 2012년 의회가 그 부지를 직접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시의회와 설계사무소는 '지속가능성이 높은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프로젝트를 정교하게 다듬는 데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설계는 아파트 건물이 지배하는 도시 지역에 도로와 집을 재도입하면서 주거 단지를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줄리아 바필드 스털링상 심사 위원장은 "이것은 노리치 시의회가 야심적으로 많은 부분을 세심하게 준비하며 10년에 걸쳐 만들어낸 공공임대주택"이라며 "넓고 쾌적하고 저에너지로 지어진 이 주택이야말로 앞으로 공공임대주택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고 찬사를 보냈다.

전통 주택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런데 이 주택의 디자인은 어떻게 나왔을까. 설계를 맡은 미카일 리치스 건축사무소는 이 부지 인근의 골든 트라이앵글 지구의 빅토리안 테라스 주택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도로의 너비는 19세기의 전형적인 도시 구조 모델을 따랐고, 디자인에서도 전통적인 영국식 주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국 주택 디자인의 맥을 이으면서 나머지 부분은 과감하게 현대적으로 푼 셈이다.

주민의 일상을 섬세하게 고려했다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각 입주 세대에는 자체 현관과 더불어 유모차와 자전거를 둘 수 있는 로비 공간, 전용 발코니가 있다. 각 블록은 정원에서 맞닿은 길을 공유하며 작은 녹지 공간도 갖췄다. 여러 세대가 아담하나마 정원을 공유한 것이다. 주차시설은 최대한 가장자리로 밀어내 단지 내 거리는 보행자가 안전하게 걸어 다닐 수 있다.

작은 디테일까지 충실했다  

[사진 Tim Crocker,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사진 Tim Crocker,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외관 설계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크림색 벽돌의 색과 질감 등의 재료에도 신경을 써 우선 건물 입면의 전체 윤곽을 밝게 보이게 연출했다. 창문 디자인도 신중하게 했다. 블록 사이의 거리 너비 기준을 지키게 하기 위해 지붕을 과감하게 비대칭으로 디자인했다. 또 지붕은 15도 각도로 기울어져 각 세대의 테라스가 집 뒤의 햇빛을 차단하지 않도록 했다.

서민의 품격을 올렸다 

영국 매체 옵저버는 "과거의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이 프로젝트는 주민들을 다른 사람들과 다른 종류의 시민으로 구별하거나 표시하지 않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공공임대주택은 '아름답지 않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사람을 충분히 배려한 디자인으로 서민들의 품격을 업그레이드했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겸손한 걸작"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사진 Tim Crocker 촬영, 영국왕립건축가협회 RIBA]

영국왕립건축가협회 심사위원단은 이 공공임대주택을 가리켜 한마디로 "겸손한 걸작"이라고 격찬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노리치의 공공임대주택 담당 의원인 이사 가일 하리스는 "이 프로젝트는 이미 많은 상을 받았으며, 다른 시의회의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진짜 핵심은 사람들이 좋은 퀄리티의 집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고 난방비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라며 "시는 지금 더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계를 주도한 데이베드 미카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지역 당국에서도 충분히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인다면 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게 저렴하면서도 아름다운 집을 제공할 수 있다"며 "이 프로젝트가 그 영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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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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